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모문룡 (문단 편집) ==== 원숭환이 모문룡을 처단한 것은 합당했는가? ==== 위에서 제시한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명청교체기에 많은 자료가 소멸되었고 모문룡, 원숭환 당사자 모두가 처형되어 관련 기록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사정이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서술해도 모문룡에게 문제가 많았던건 분명한 사실이다. [[가도]]에서 진을 치고 있는 것만으로도 [[조선]]에는 큰 민폐였는데 [[인조]]가 즉위하고 [[왕]]으로 인정받기 위해 모문룡에게 의지하자[* 모문룡이 이후 이걸로 엄청 울궈먹는다. 심지어 직접적으로 인조에게 "나 아니면 왕도 못 됐을텐데 물자 좀 달라는걸 거절해?"라고 생떼 부리다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일까지 존재한다.] 이걸 빌미로 조선에서 미친듯이 수탈을 시작하고 양곡으로만 26만 8천 7백여 석, [[은]]으로는 맨 마지막 해만 50만 냥을 뜯어간다. 심지어 <[[조선왕조실록]]>에는 모문룡의 [[이름]]이 총 580번이나 등장할 정도로 큰 해악을 끼친다. 물론 "타국에는 민폐라도 자국에게는 명장이 될 수 있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웅정필]]과 원숭환의 전략은 조선의 힘을 빌려서 함께 청나라를 무찌르는 것이었고 특히나 [[인조]]가 친명 반청을 기치로 내세운 왕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민폐를 끼쳤던건 큰 문제였다. 그렇다고 본국에 민폐를 안 끼친 것도 아닌데 가도를 경영하고 명나라의 [[유민]]을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명나라 본국으로부터 매해 20만 냥의 은을 받아간다. 그러나 이 모든 점을 고려하더라도, 굳이 직접 모문룡을 죽인 것은 여전히 설명이 되지 않는다. 문제의 핵심은 모문룡이 죽여 마땅한 인물이었나 아니냐가 아니라, 왜 그가 조정에 모문룡의 죄를 보고하고 그를 처벌할 것을 청하는 일반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직접 모문룡을 죽여야 했는가이기 때문이다. [[명나라]] 조정에서 보면 아무리 모문룡의 죄가 사형을 당할 만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판단하고 집행하는 것은 [[원숭환]] 개인이 아닌 [[숭정제]]의 조정이어야 한다. 만약 모문룡이 조정에 뇌물을 많이 바쳐서 등의 이유로 처벌을 제대로 받지 않을 것을 염려했다면,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썩어빠진 조정의 권위를 더 이상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청나라]]와의 일이 급해서 원숭환이 일단은 용서받았지만, 사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조정에서 즉시 원숭환을 잡아들여 죄를 묻는 게 당연한 대응이었다. 이 때문에 많은 경우 동료 장수를 임의로 죽이는 것은 반란의 첫 번째 단계가 되는 동시에 반란으로의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것으로 간주된다. 사실 결과적으로 보면 원숭환은 자신의 죽음을 상정하지 않고 나중에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당시 전시 상황이 길게 지속된 상태에서 한 곳의 군진 지휘관을 교체한다는 것은 사실 반대로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상황이다. 오랫동안 군진을 거의 사병화한 지휘관이 조정의 명령에 충실히 따르면 다행이지만, 반발하여 적에게 투항할 것도 미리 계산을 해야 할 상황이다. 이렇게 따져도 구금하여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처형한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그러나 모문룡은 원숭환과 마찬가지로 [[숭정제]]로부터 임명을 받은 장수임에는 틀림없고[* 특히나 모문룡은 원숭환보다 먼저 전장에서 [[부하]]를 처형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상방 보검을 받았다. 직급 자체는 1단계 낮아도 원숭환과 동일한 위치임을 명나라 조정이 인정했다는 뜻이다.--그리고 직급이 밑이 아니다. 명나라는 도독부 도독을 황족에게 주는 명예직화하였지만 상서보다 도독이 낮다고 할 것이 특별히 없다.--] 원숭환이 임의로 처형할 수 있는 부하 장수는 아니었다. 이를테면 [[이순신]]이 열받은 나머지 [[원균]]을 죽여 버린 것과 비슷한 상황인 셈인데[* 사실 [[임진왜란]] 때 정말로 이와 비슷하게 될 뻔했다. 다만 원균을 죽여버릴 뻔한건 이순신이 아니라 [[권율]]이었다. 원균이 호언장담하며 이순신 대신 [[삼도수군통제사]]가 됐는데,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자마자 말을 바꿨다. 이에 열 받은 권율이 원균에게 [[곤장]]을 때렸는데 만약 권율이 원균을 [[참수형]]으로 다스렸으면 진짜 이와 똑같은 일이 날 뻔했다.][* 다만 모문룡은 그 포악함 때문에 처형당한 것이었는데, 모문룡의 군사적 능력은 원균에 비하면 훨씬 뛰어났지만 포악함 역시나 원균과는 차원을 달리했다. 원균은 민간인을 죽여서 수급을 거뒀다는 의혹 정도만 있지 모문룡은 그 짓거리를 진짜로 하고 다녔고, 거기다가 원균이 모문룡마냥 아예 어디서 틀어박혀 조정을 무시하고 군사들을 지멋대로 다루지도 않았다.] 원숭환이 아무리 공적과 명성이 높았다고 해도 모문룡을 죽인 것은 명나라 조정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원숭환이 이런 절차상의 무리를 해가면서까지 모문룡을 죽여야 할 급박한 이유는 없었다는 점이다. 모문룡이 명나라에 큰 도움은 안 되었을지 몰라도 청나라에 투항해서 명나라를 공격한다거나 하는 시급히 주살해야 할 정도의 [[반역]]을 계획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원숭환]]이 순간적으로 분노해서 칼을 뽑아 죽인 것도 아니고, 주연을 즐기는 등으로 시간을 보내며 기회를 노리다가 불시에 포박해서 죽인 것으로 보아, 명백히 계획적으로 죽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원숭환은 이에 대해 [[숭정제]]에게 석고대죄한다는 표현을 썼지만, 이것이 석고대죄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알았을 텐데 왜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했는지는 지금까지도 의문으로 남아있다. 결과적으로 원숭환은 모문룡을 처형한 일로 숭정제의 신임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모문룡의 중재로 조선-후금과 무역을 하면서 커다란 이익을 얻던 북경의 상인들에게 큰 원한을 사게 되었다. 이들은 원숭환을 참소했고, 결과적으로 원숭환도 모문룡과 같은 길을 걸어 처형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