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모용초 (문단 편집) === 장안 이주 === 403년, 후량의 군주 [[여륭]]이 [[후진(오호십육국시대)|후진]]의 [[요흥]]에게 항복했다. 여륭은 항복하면서 고장의 10,000여 호를 인솔해 후진의 도읍인 장안으로 이주시켰는데, 모용초 모자도 여륭의 무리를 따라 장안으로 이주하기로 결심했다. 장안으로 출발하기 전, 어머니 단씨가 모용초에게 말했다. > "우리 모자가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호연씨 덕분이었다. 호연평은 비록 지금 죽었으나, 나는 너를 호연평의 딸과 맺어주어 호연평에게 보은할 생각이다." 이리하여 모용초는 호연평의 딸, 호연씨를 아내로 맞이했다. 모용초는 자신이 모용덕의 조카임이 드러나면 후진 조정에서 체포하러 올까 두려워 신분을 숨긴 채 장안 바닥에서 미친 척하며 구걸하고 다녔다. 모든 장안 사람들이 그를 경멸했지만 동평공 요소(姚紹)는 모용초가 범상치 않음을 알아보고는, 후진의 군주인 형 요흥에게 가 모용초에게 작위를 내려 붙잡아 둘 것을 권했다. 요흥은 모용초를 불러 그에게 이런저런 말을 걸어보았으나, 모용초는 일부로 엉뚱한 답을 하거나 질문을 씹는 등 멍청한 연기를 이어나갔다. 요흥은 모용초를 풀어주고 요소에게 말했다. > "'고운 피부는 둔한 뼈를 싸지 않는다'[* '''연피불과치골'''(姸皮不裹癡骨), 즉 외모가 아름다우면 훌륭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는 중국 속담이다.]는 속담은 참으로 허황된 말이다." 요흥이 그에게 관심을 모두 버린 덕분에 모용초는 안심하고 장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