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모용황 (문단 편집) == 생애 == 모용황은 297년에 모용외의 3남으로 태어났는데, 키가 [[https://zh.wikipedia.org/wiki/慕容皝#性格特徵|7척 8촌]][*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191cm가 나온다.]으로 매우 큰 것을 넘어서 그냥 거인이었다. 321년에 세자로 책봉되고 333년에 모용외가 사망하면서 [[모용부]]의 제5대 대인이 되었다. 그러나 배다른 형인 모용한과 동생 [[모용인]], [[모용소]]와 대립하여 모용부는 내분을 겪게 되었다.('''3형제의 난''', 333. 윤10~336. 1) 모용인은 모용소와 반란을 꾸몄으나 발각되어 모용소가 살해당하자 평곽을 거점으로 반란을 일으켜 요동 일대를 장악했다. 이복형 모용한은 [[단부]]로 망명했다가 단부의 군대를 이용해 동생 모용황을 공격했다. 한때 모용황은 멸망 직전까지 몰렸으나 모용한이 모용부가 멸망할 것을 두려워하여 철군하면서 살아남았다. 336년, 모용황은 동생 모용인을 공격하여 격파하고 다시 모용부의 지배권을 확립했다. 337년, 모용황은 강남의 한족 왕조인 [[동진]]에 대한 종속적인 관계를 단절하고, 연왕을 자칭하며 연나라(전연)를 건국했다. 당시 모용황은 단부와 대립하고 있었기 때문에 [[갈족]]의 [[후조]]와 동맹을 맺고 338년 단부를 협공했다. 모용황이 혼란에 빠진 단부를 약탈하고 튀자, 후조의 [[석호(후조)|석호]]는 분노하여 단부를 멸망시킨 후 전연과 전쟁을 시작했다. 후조의 침입으로 한때 수도인 극성이 포위되기도 했으나 모용황은 농성끝에 후조군을 격파하고 역관광하여 영토를 일부 확장했으며, 이후 후조의 유주를 계속 공격하여 약탈전을 벌였다. 340년에 후조가 다시 대군을 이끌고 전연을 위협했으나 모용황은 후조의 전선을 우회하여 유주의 계를 습격, 대승했다. 342년에 용성으로 천도했으며, [[고구려]] 침공을 감행해 수도 [[국내성]]을 함락시키는 등 동정에서 대승을 거두고 배후의 위협을 제거한 뒤, 후조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방어하고 재차 [[부여]]를 침공하여 [[현왕(부여)|현왕]]을 사로잡는 등 상당한 전과를 올렸다. 344년에는 선비 [[우문부]]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한편 모용황은 [[한족]]의 유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한화]]정책을 취했으며, 농경을 장려하여 국가체제를 정비하는 데 주력하다가 348년, 수렵 도중에 낙마 사고로 인해 머리를 크게 다쳐 결국 붕어했다. 아들인 열조 경소제 [[모용준]]의 치세때 '태조 문명제'로 추존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