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모터스포츠 (문단 편집) ====# 태동 #==== 위에서 말했듯이 한국 최초의 자동차 경주는 1987년 3월 19일 강원도 진부령-용평 구간에서 개최된 [[https://www.youtube.com/watch?v=CR1TV3KJ21o|제1회 한국 자동차 경기대회]]와 1987년 6월 13일~14일에 영종도의 뻘밭(...) 개최된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87/1791756_19322.html|제1회 그랑프리 코리아 자동차 경주대회]]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본격적인 온로드 경기는 1995년 용인 자연농원 모터파크(이후 [[AMG 에버랜드 스피드웨이]]로 개칭, [[메르세데스-AMG|현재는]])의 개장과 함께 MBC 그랑프리 1전이 치러지면서 시작되었으며, 초창기이고 각종 레귤레이션등이 명확하게 갖춰지지 않은 상태여서 1995년 온로드 1전에서 우승자인 이명목(당시 J-machine) 선수의 머신에 규격외품이 이용되었다는 논란이 일면서 우승이 취소되고 지루한 공방전이 이루어지는 얼룩을 갖고 시작되었다.[* 참고로 이때 이 논란을 제기한 사람이 당시 라이벌 드라이버 중 한 명이던 박정룡 전 아주자동차대학 교수다.] 덤으로 이 와중에 당시 한국자동차협회에서 새로운 집행부를 구성하면서, 기존 집행부 내 일부 인사들을 새로운 집행부 구성과정에서 제외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한국자동차협회는 두 쪽으로 나뉘게 되었고, 결국 한국자동차협회는 기존의 한국자동차협회와 한국 자동차경기협회[* 현재의 대한 자동차경주협회]로 갈리게 되었다. 관련 기사 :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121300099143001&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5-12-13&officeId=00009&pageNo=43&printNo=9296&publishType=00010|매일경제 1995년 12월 13일자 기사]]/[[http://www.gpkorea.com/news/articleView.html?idxno=4311|GP코리아의 `응답하라 1995` 한국자동차경주협회 탄생의 비화 기사]],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022800099142009&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6-02-28&officeId=00009&pageNo=42&printNo=9368&publishType=00010|매일경제 1996년 2월 28일자 기사]] 차량의 경우 레이스에 적합한 차량이라는 것이 별로 없어서 비교적 가벼운 차체가 강점인 [[기아 프라이드]]가 초창기에는 사랑받았고, 온로드 시대가 열리면서부터는 (크고 무거운 차체+강한 엔진 구성을 갖는) [[콩코드]]와 (작고 가벼운 차체+약한 엔진 구성을 갖는) [[스쿠프]] 양강 체제가 갖추어졌고, [[티뷰론]] 시판 이후 국내 레이스의 상위 클래스는 티뷰론으로 통일되는 경향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현대오일뱅크]]가 메인 스폰서인 `오일뱅크 레이싱`이 창설되면서 국내 온로드 경기는 본격적인 경쟁체제에 접어들게 되었다. 1995년 1전의 논란과 함께 한동안 서킷에서 볼 수 없었던 이명목이 오일뱅크의 간판급 선수로 돌아와 라이벌 박정룡과의 치열한 접전[* 라이벌답게 차량도 본문에 언급된 양강 체계인 콩코드(박정룡)와 스쿠프(이명목)이었다.]을 벌였지만, 박정룡이 협회[* 한국 자동차경주협회, 현재의 대한 자동차경주협회를 말한다.] 운영 등을 위해 서킷을 떠나면서 국내 레이스는 세대교체가 시작되었다. 이후 오일뱅크에 맞설 강팀으로 같은 [[현대그룹]] 계열인 성우 그룹의 스폰싱을 받는 `인디고 레이싱`이 등장, 서킷은 양강 체제를 구축한다. 이 두 팀의 위엄이 어떤 정도였느냐 하면... [[니콘]]와 [[캐논]]이 [[DSLR]]시장에서 엎치락뒤치락 하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당시 다른 팀들은 [[콩라인]]은 커녕 그저 서열 3위라도 잡으려 애쓰는 상황이었다. 또한, 국제 경기의 유치도 이루어져 2001년에는 아시아 규모의 경기인 AFOS(Asian Festival Of Spped) 6전이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개최되었으며 [[창원 시가지 서킷]]에서는 1999년부터 국제 [[포뮬러 3]] 경기가 시가지 레이스의 형태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오프로드 경기는 해외에서 더 두각을 나타내는 편이었다. (국내는 볼 거 없으니 당연하다) 현대는 지속해서 APRC(아시아-퍼시픽 랠리)에 나가면서 입상을 하는 편이었고 이를 계기해서 후에 자연스럽게 [[WRC]]로 진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른 업체들도 IMF 이전에 파리-다카르 렐리에 기아의 스포티지나 쌍용의 무쏘 등이 몇 번 출전했었고 무쏘는 파라오 랠리에서 클래스 우승, 종합순위에서는 2위를 하는 등 성적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또 [[1995년]] 호주랠리에서 세피아가 미개조부분 우승을 했다.~~ 하지만 IMF 가 출동하면 어떨까?~~[* 조금은 다른 얘기지만 현대가 WRC에 출전한 것은 F2 클래스를 포함하면 [[1998년]]이긴 하지만 WRC 클래스에 정식 참여한 것은 [[2000년]]부터이므로 IMF 이후다] 이후 현대자동차는 2012년 독일에 모터스포츠 법인을 설립하고 2013년 차량개발과 인원확보를 통해 2014년 WRC를 다시 진출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