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모토로라 (문단 편집) == 역사 == 모토로라는 1928년 폴 갈빈(Paul Galvin)[* 1895년에 태어나 1959년에 6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과 조셉 갈빈(Joseph Galvin)[* 1899년에 태어나 1944년에 4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형제가 설립하였다. 갈빈은 총 자본금 565달러[* 현재 가치로 대략 $8,500.], 종업원 다섯 명과 함께 [[시카고]]에 갈빈제조회사를 설립하고 당시 큼지막한 배터리로만 작동하던 [[라디오]]를 가정용 전기로 직접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정류기(Ac/Dc adapter)를 생산하여 제품으로 내놓았다. 배터리를 매번 살 필요 없이 코드를 꽂아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 1930년대에는 최초의 차량용 [[무전기]][* 당시 차량용 무전기는 [[경찰]]만 가질 수 있었다.]를 개발하여 '모토로라'라는 상표로 판매하였고 이 이름은 1947년부터 회사의 정식 명칭으로 사용하였다.[* motor+ola(접미사)[[https://highnames.com/motorola-naming-origin/|링크]]] [[2차 세계대전]] 중에는 군사 통신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한 최초의 휴대용 무선통신기기인 핸디토키(Handie-Talkie) 혹은 [[워키토키]](Walkie-Talkie)라 불리는 장비를 개발해 [[연합군]]의 승리에 많은 기여를 했다. 이때부터 라디오를 중심으로 한 무선통신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 [[교통경찰]]들의 농담으로 "제아무리 도주 운전자가 빨라봤자 우리가 쓰는 모토로라에 비하면 느리다"라는 것도 있다. 1955년에는 모토로라를 상징하는 M자를 펼친 로고를 제키 지너가 디자인하여 공식 채용되었다. 이듬해인 1956년에는 최초의 [[무선호출기|삐삐]]를 개발하여 [[병원]]의 의료인들을 중심으로 보급하기 시작하였다. 이후로 병원에서 일하다 말고 삐삐를 들여다보는 것이 TV 쇼 등에서 [[클리셰]]로 나오게 된다. 1960년에는 최초의 무선 휴대용 [[텔레비전]]을 개발하였으며 63년에는 최초의 직각 컬러 브라운관을 개발한다. TV 사업부는 1974년에 [[파나소닉]]에 매각. 1969년 [[아폴로 11호]] [[달]] 착륙 때 "이것은 인간의 작은 발걸음 하나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이라고 말한 [[닐 암스트롱]] 선장의 생생한 육성이 지구에 전달된 것은 바로 모토로라가 개발한 우주 통신용 무전기를 통해서였다. 1973년에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휴대폰]]을 개발했으며, 1983년 [[https://youtu.be/hdpURsDLFl4|모토로라 다이나텍 8000X]]는 최초의 상업용 휴대전화로 승인받았다. 1980년대와 90년대에는 [[반도체]] 분야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 80~90년대 모토로라의 680x0 시리즈 [[CPU]]는 [[인텔]]의 80x86과 쌍벽을 이루었던 CPU로 [[Mac(컴퓨터)|Macintosh]], [[아미가]] 등의 고성능 컴퓨터에 사용된 바 있으며 그 중에서도 [[모토로라 68000|68000]]은 왠지 게임 산업 쪽에서 대히트, [[CPS]]나 [[MVS]] 같은 아케이드 기판, [[메가드라이브]] 같은 가정용 게임기에 들어가며 장수한 제품이다. 1984년 최초의 32비트 프로세서인 MC68020을 내놓았다. MC68xx 시리즈 CPU 등은 초저전력으로 낮은 스펙임에도 [[Palm OS]] 등에선 나름 오래 버텼다. 2004년 반도체 생산 부문은 [[프리스케일]]이라는 독립된 회사로 분리되었다. 2006년에는 심볼 테크놀로지(Symbol Technologics)를 39억 달러($)에 인수하여 기업용(SOHO) [[인터넷 공유기|AP]]와 바코드 스캐너 등 기기 제조에도 뛰어들었다.[* 아직도 심볼 시절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데, 영업을 시작한 지 좀 오래된 [[롯데마트]]에 가보면 심볼의 무선 AP가 설치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일부 가게나 마트 등에서 심볼 로고가 부착되어 있는 바코드 스캐너도 종종 볼 수 있다.] 1990년대 이후에는 무선통신 분야를 선도하였다. 1996년에 최초의 플립형 초경량 휴대폰 [[스타택]]을 개발하여 공전절후의 히트를 치게 된다.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이리듐 계획]] 같은 거창한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이리듐 계획의 서비스 자체는 아직 이루어지고 있다지만 90년대 후반경에 경제지나 시사 주간지, 월간지 등을 탐독했던 사람이라면 꾸준히 게재되었던 이리듐 계획의 광고를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일반 대중들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는 아니었으므로, IT 기술 분야에 웬만큼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지금까지도 기억하는 이는 드물다. 결과적으로 이리듐 계획은 당초의 목표를 이루지 못했지만, 이런저런 통신사들을 제법 끌어모은 거대 프로젝트였기 때문에([[SK텔레콤]]도 여기 지분을 투자했었다) 의외로 모토로라가 직접 입은 손해는 모토로라가 가진 돈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나중에 계획 자체를 통째로 [[미군]]에 넘기면서 또 얼마를 건져서 결국엔 별 금전적인 손실 없이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1998년에는 [[노키아]]의 출현으로 휴대전화 분야에서는 점유율 1위 자리를 내주게 되지만, 이후에도 [[RAZR]]와 같은 히트 상품을 만들어 내었다. iPhone이 출시되기 전까지 4년 동안 약 1억 3000만 대가 팔렸으며 [[폴더폰|폴더형 폰]] 중에서는 가장 많이 팔렸다. 1999년에는 웹 브라우징과 이메일 송수신이 가능한 [[스마트폰]] 아이덴 i1000을 내놓았다. 제품 공정에 식스 시그마를 도입한 최초의 기업이다. 식스 시그마란 쉽게 말해서 1,000,000개의 생산 제품 중 3개에서 4개 정도의 불량품만 허용하는 것으로 불량 제품을 거의 없애겠다는 경영 혁신 기법. 최근에는 제로 디펙트(Zero defect)라고 해서 불량률 '0'을 달성하겠다고 하기도 하지만, 그 당시에는 엄청나게 획기적이면서도 도전적인 경영 방침이었다. 2011년 1월 4일부로 ''''모토로라 모빌리티'와 '모토로라 솔루션''''으로 나뉘었다. 휴대폰 관련 사업부를 모토로라 모빌리티로 분사하였고 모토로라 솔루션은 RFID, 산업용 관련을 맡고 있다. 이 중 모토로라 모빌리티는 같은 해 8월 15일에 [[구글]]에 인수되어 구글의 자회사였지만, 2014년 1월에 [[레노버]]에 재매각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