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목종(고려) (문단 편집) == 평가 == 오랜 기간 목종에 대해서는 [[헌애왕후]]와 [[김치양]]의 전횡을 막지 못한 무능한 [[군주]]라는 부정적 시선이 강했으며, [[이제현]]은 목종의 비극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불행이지만 국가적으로는 다행이었다." 는 식으로 평가를 내릴 정도였다. 다만 목종이 과연 기존 평가처럼 실권도 없던 나약한 군주였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상당한데 업적이 생각보다 많고, 그 업적을 [[섭정]]직에 있던 헌애왕후가 모조리 했다고 보기에는 목종의 실권이 생각보다 상당했던 것으로 여겨질법한 대목도 많기 때문이다. [[성격]]도 상당히 군자스러운 면모가 보이지만 어찌됐든 결국 효심이라는 핑계로 [[헌애왕후|어머니]]의 전횡을 제때 막지 못해 본인과 어머니 둘 다 끝이 좋지 않았다는 점과 집안 단속을 제대로 못한 점은 변명의 여지가 없으며, 본인이 신뢰하기도 한 다음 임금 [[현종(고려)|현종]]이 [[여요전쟁]]을 마무리짓고, 고려를 중흥기에 올리면서 '''존재감이 묻히는 경향도 있다.''' 다만 [[강조(고려)|강조]]가 멋대로 목종을 폐위하고 묘호와 시호, 능호를 올리자 신하들과 백성들이 불쾌해했다는 것을 보면 어찌 되었든 당시 사람들은 목종이 마땅히 폐위당해야 할 [[폭군]]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당대 사람들이 강조를 손가락질한 것은 일개 신하가 감히 정변으로 임금을 갈아치웠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전근대에 왕권은 신성한 것이었으며, 또한 아직 건국 100년도 되지 않은 고려는 [[용손]]임을 주장하여 [[왕권신수설|왕권신수]]를 공고히 하였으므로 더더욱 그러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