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목지국 (문단 편집) == 삼국사기 초기 기록 문제 == [[삼국사기]]를 보면 기원전부터 백제와 신라가 전쟁을 벌였다는 식의 기록이 있는데, 고고학적으로나 문헌학적으로나 신뢰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때문에 이러한 전쟁들이 자리잡았다는 현장이 실제로는 목지국과 백제국의 분쟁 현장이었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주된 전장은 낭자곡성(청원), 와산성(보은), 구양성(괴산옥천), 모산성(진천) 등인데, 진한과 마한 소국들이 다툰 기록이 백제와 신라가 싸운 기록으로 훗날 옮겨졌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 일대는 진한에 속한 지역이 아닌 실제로는 목지국의 강한 영향력 아래 있던 지역들이었기에, 백제가 목지국 잔여 세력들을 완전히 뿌리 뽑으려면 반드시 함락해야 했던 입지가 중요한 군사 요지들이었다. 이는 사로국으로 망명하기 전 충주 [[칠금·금릉동]]에 소재한 마한 거수국이었던 김씨 족단이, 목지국 편에서 목지국 친위 세력들과 함께 백제와 싸운 경험의 기록이었을 개연성이 현재로선 높아보인다.[* 신라사 전공 강종훈 교수의 신라상고사 연구 참조. 다만 강종훈 교수는 여러 지정학적 측면에서 충주에 소재한 진한 거수국이 충북에 있던 세력들 및 경북 영주, 상주에 있던 진한 서북부 세력들과 연계해 백제와 투쟁했을 것으로 여러 [[문헌]] [[사료(역사)|사료]]를 통해 효과적으로 입증하였으나, 이 저서가 나오던 시기에는 충주의 [[고고학]]적 성과가 발굴되기 전이었기에 [[충주]]에 있었을 유력한 [[삼한]] 거수국은 [[진한]] 소속 거수국이었을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발굴 결과 충주에 있었던 거수국은 (고고학적으로는 [[한성백제]]와 거의 같은 시기인 3세기 중반에 건국된 것으로 추정되는) 천안, 홍성과 거의 계통이 같은 전형적인 목지국 계열 [[마한]] 거수국이었던 걸로 드러난다.] 훗날 [[진흥왕]] 때 신라가 청주, 천안, 청원 외 옛 목지국 직계 세력 지역을 모두 장악에 성공하는 것도 특기해볼 사항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