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몽촌토성 (문단 편집) == 용도 == 현재는 [[풍납토성]]과 함께 백제의 첫번째 수도였던 하남 위례성이었을 것으로 거의 확정된 상태.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위례성은 북성(北城)과 남성(南城)으로 나뉘었는데, 학자들은 북성이 풍납토성, 남성이 몽촌토성이라고 추측한다. 학자들은 풍납토성이 사실상 왕성이고, 몽촌토성이 외적이 공격하는 등 비상시에 들어가 농성하는 대피성(城)이라고 추정한다. 풍납토성에서 계속 출토되는 어마어마한 유물로 미루어 볼 때 두 성간 관계가 이러했을 확률이 매우 높다. 사실 이렇게 성을 투 트랙으로 운용함은 [[삼국시대]]의 [[고구려]]나 [[신라]]에서도 보인다. 고구려 역시 첫 번째 수도인 [[졸본]]에서 대피성 개념으로 [[오녀산성]]을 사용했고, [[국내성]]에도 [[환도성|환도산성]]이라는 대피용 성이 있었다. 후에 천도하는 평양에도 이 같은 개념이 적용되어 [[평양성]] 외에 [[대성산성]]을 따로 수축했다. 신라도 수도 [[경주 월성]] 외에 동쪽 산자락에 [[명활산성]]이라는 전시 예비수도를 두기도 했었다. 백제에도 이 같은 개념이 적용되었던 걸로 생각 가능하다. 또한 이러한 방식은 시대를 가리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후대의 [[후삼국시대]]에도 [[후백제]]가 평지의 왕성(중노송동 일대 추정)과 대피용성인 [[동고산성]], 남고산성을 운영하였으며, [[조선시대]]에도 평시의 [[한성]]과 비상시의 [[북한산성]], [[남한산성]]을 건설했고, 조금 더 위급한 상황이 예상되면 강화도를 이용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