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묘족 (문단 편집) == 거주지 == 주 거주지역은 [[구이저우성|구이저우]], [[허난]], [[윈난]], [[광시]], [[사천]], [[하이난]] 등 성(자치구)에 분포하고 있는데, 그중 첸둥난먀오족둥족자치주(黔东南苗族侗族自治州)는 묘족의 가장 큰 집거구이다. 묘령산맥과 무릉산맥에 많이 산다. 베트남, 라오스 등 인도차이나 반도에도 묘족의 일파가 일부 거주하며, 이들은 흐몽족 또는 [[몽]]족이라 불린다. 참고로 미얀마 역사에 등장하는 몬족과는 전혀 다른 민족이다. 주로 이웃한 [[야오족]], [[이족|로로족]]과 함께 화전을 일구었으며, 보다 선진적인 농경 기술을 지닌 [[한족]]들이 밀림을 개간하고 남하하면서 거주 영역이 계속 축소되었다. 1466년 광서성 일대에서 묘족과 요족, 장족이 명나라에 반기를 들고 첸장강에 있는 대등협에서 봉기한 적도 있었다.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명나라는 정규군 3만여 명에 민병 16만여 명을 동원했다. 여기에는 몽골병 1천여 명에 위구르 용병도 포함되어 있었다. 묘족들과 요족들은 험준한 산골짜기에 목책을 짓고 저항했으나 명군이 화공을 사용하면서 목책이 무너지고 같이 봉기하였던 이족들이 묘족들의 뒤통수를 치면서 상당수의 묘족 봉기군이 학살당한다.[* 봉기가 진압된 이후 [[이족]]은 명군에 편입되었고, 이후 이족은 묘족의 화전(火田, 산을 불태우고 만든 농지)을 빼앗은 후 다른 소수민족들의 봉기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았다.] 중국 [[구이저우성]] 인근에 아파트 20층 높이의 동굴이 자리하고 있으며, 축구장 3~4개 크기의 동굴안에는 마을이있고,마을 안에는 18가구, 73명의 묘족이 살고있다.[[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7843256&memberNo=32660183|묘족 포스트]]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은 이들을 이용해 베트콩 및 북베트남을 공격했으나, 전쟁이 북베트남의 승리로 끝난 이후 베트남과 라오스에 살았던 몽족 난민들이 보복을 피해 태국과 미국으로 대거 망명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