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속 (문단 편집) == 역사 == 무교의 역사는 [[고조선]] 시기에서부터 이미 존재했다. [[단군신화]]에서는 [[환웅]]이 [[신시#s-1]]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신시는 제왕이 하늘에 제사를 하는 장소이자 굿당으로, 환웅과 [[단군왕검]]은 제천의식을 주관 한 무당으로 해석 할 수 있다.[* 박일영. 한국 무교의 이해. 분도출판사. 1999: 22][* 해석하자면 [[제정일치]] 사회였던 것이다.] 상고시대의 무교는 권력과 밀접하게 연관 되었기에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고, 무당들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신라]]에서는 무당을 왕자의 호칭으로 삼았고([[남해 차차웅]]), [[고구려]]에서는 사무(師巫)라는 명칭이 있었다. 가장 오래 된 대한국 제례나 풍속의 기록으로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기록이 있다. [[마한]]의 [[천군]]·[[소도]], [[동예]]의 무천, [[부여]]의 [[영고#s-2]], [[고구려]]의 [[동맹#s-3]]이 모두 당신의 제례다.[* 이능화. 조선무속고. 창비. 2008: 71~72] 원래 그 위상이 높았던 무교는 후세에 문화가 진화하고 거기다 [[유교]]·[[불교]]·[[도교]]를 비롯한 외래 종교들이 들어오자 점차 쇠락하며 다른 종교와 융합이 이루어지기도 했으며 특히 공통점이 강한 도교와 융합이 이루어졌고, 불교, 유교와 영향을 주고받았다. [[삼국시대]]에서의 무속은 시조제[* 시조에게 드리는 제사], 농신제[* 풍년을 기원 하는 제사], 산천제[* 산과 강에 드리는 제사]의 모습으로 나뉘어져 전승 된다. [[삼국통일]] 이후로도 신라의 왕들은 새해를 맞이 하여 시조제를 지냈는데, 이는 그들이 하늘의 자손임을 나타내는 의례였다. 국가나 공동체 차원의 제천의식이 아닌, 액운과 질병을 쫓아내기 위한 개인적인 목적의 굿은 [[통일신라]] 후기부터 역사서에 처음으로 언급되기 시작하는데, [[처용무]]가 그 예이다. [[고려]]에서도 황실의 안녕과 복을 비는 공적인 제천의식과 예언적 기능을 갖춘 무속이 자리를 잡았다. [[두두리]]와 같은 토착신 숭배도 기록되어 있으며, [[헌종(고려)|헌종]], [[예종(고려)|예종]], [[인종(고려)|인종]] 때에는 무속인들을 모아서 기우제를 지냈다. 특히 인종 때는 무속인들의 세력이 매우 커졌는지, 무속인의 말을 듣고 왕이 [[이자겸]]의 처자식을 우대했다든가 [[벽골제]]의 둑을 헐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를 좋지 않게 본 조정의 신료들이 무속인의 세력을 견제하려 한 흔적이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다. [[충렬왕]] 때부터는 강신으로 인해 무속인이 된 사람들에 관한 기록이 곳곳에서 등장하며, 그 당사자는 남녀나 귀천을 가리지 않았다. 《[[동국이상국집]]》에 기록된 고려 시대의 굿 묘사는 현대의 것과 거의 다르지 않았다. 조선 전기까지도 국무당을 비롯 한 산천에서 국행 및 내행기은이 거행되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유교]]가 국가 운영의 주요 이념이 되어 무교도 최소한 권장되지는 않는 것이었고[* 유교는 이를 [[괴력난신]]이라 하여 무교뿐 아니라 [[숭유억불|불교도 억제하고]] 중국식 [[도교]]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여러 조선시대 민속 설화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런 종교들을 적극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았다. [[조선의 천주교 박해]] 같은 경우에는 초기에는 이와 같이 민간 신앙의 영역으로 탄압의 대상이 아니었으나, 제사를 금지하는 등 유교와 정면으로 대치되었고, 이후 [[황사영 백서 사건]]으로 역적 행위를 저지른 탓이 크다.] 사회적 영향력이 다소 축소되었다. 그에 따라 민간의 신앙으로만 존속되어 왔다.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시대에 들어서서는 미신타파라는 이유로 탄압을 받기도 했다. 북한에서도 [[공산주의]] 이념과 [[국가 무신론]]에 따라 무교는 미신이라며 단속대상이고[* 물론 남한과 마찬가지로 점을 보거나 무당을 찾아다니는 경우는 많다. 비록 몰래지만.] 연변에서도 무교는 1960년대와 70년대에 [[중국]]의 공산주의 이념과 [[문화대혁명]]에 따라 미신타파, 구습이라며 탄압받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수천년 동안 특정한 이름이 없었던 이 종교에 '무속', '무속신앙', '무교'라는 이름이 지어진 것도 바로 이 시기이다. 탄압을 받으면서도 드디어 고유한 이름을 갖추고 하나의 엄밀한 종교로서 정체성을 확립한 것이다. 지금은 전통 문화/종교 보전 의식이 확대되어 탄압을 가하는 경우는 사라지고 연구와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무교는 다른 나라의 모든 종류의 신령을 모실 수 있을 정도로 유연성과 포용력이 높은데, 대표적인 예로는 도교, 불교, 유교의 신령들을 받아들인 것 뿐만 아니라 근대에 이르러서는 [[예수]](!), [[https://theqoo.net/square/603572913|#]][[조지 워싱턴]], [[http://egloos.zum.com/lsm20418/v/3091527|#]][[더글러스 맥아더]][* 웹툰 [[도사랜드]]에서도 다룬 바 있다.], [[http://lsm20418.egloos.com/3066970#comment_3066970|#]][[잔 다르크]] 등 예수를 믿는 서양 인물들을 무신(巫神)으로 숭배하는 무당들도 있는 모양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