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신론 (문단 편집) ==== '''유신론적/무신론적 불가지론 (theistic/atheistic agnosticism)''' ==== 해괴하기로는 위의 "불가지론적/가지론적 무신론"보다도 더 심한 경우. 이 용어들의 기원 또한 정확한 지점의 추적이 불가능하며, 역사적, 학문적 용례가 없고 '''오로지 인터넷상 일부 신무신론 커뮤니티의 뇌피셜'''에서만 등장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우선, 나무위키 내 [[불가지론]] 항목에도 기술되어 있는, "불가지론"의 정확한 용어정의부터 짚고 넘어가보자. >'''첫 번째 의미''' >본래 의미에서 'agnosticism'은 진화론을 선보인 찰스 다윈의 맹우로 유명한 생물학자 토머스 헨리 헉슬리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인식론적 일반원리(epistemic normative principle)였다. 즉, 일종의 과학철학적 자세로서 과학적 검증 등을 통해 사실여부를 확인하는 것(='해당 사실에 대한 지식을 가질 수 있는가 없는가의 여부')이 불가능한 것에 대해서는 믿음을 갖지 않는다는 원리이며, 그 자체로 신에 대한 존재론적 고찰에만 국한된 원리는 아니었다. 즉, 어떤 주의주장, 믿음이라기 보다는 헉슬리가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한다"라고 제시한 것 >'''두 번째 의미''' >두 번째 의미는 위에 설명 된 헉슬리의 일반원리에 기반한 철학적 회의론(philosophical skepticism)의 일종으로, 하나의 인식론적 명제(epistemic proposition)이다. 이 관점은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인간이 알 수 없다 - 즉, '불가지하다' - 는 입장을 취한다. (어느 정도 연관성은 있어도) 오늘날 의미에서 '유신론'과 '무신론'과는 아예 궤를 달리하는 명제이다. 달리 말하자면, 보통 회자되는 '무신론', '유신론', '불가지론'의 의미와는 아예 관계가 없으며, '신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는 아예 별개의 명제다. 'Agnosticism'의 번역어 '불가지론'과 완벽히 의미가 일치함에서 알 수 있듯, 해당 용어는 바로 이 두 번째 의미를 직역한 결과다. [[불가지론]] 문서에선 해설이 누락되어 있으나, 쉽게 말해 오늘날 철학적 회의론이라고 알려진 것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었던 적이 있으나, 곧 이 의미는 상실되었고 아래 세 번째 의미로 변화하였다. 왜냐하면 '''이미 철학적 회의론이라는 것이 더 정교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고'''(...), 그에 비해 이 두 번째 의미로 사용된 "불가지론"이란 것은 그러한 정도의 깊은 담화를 촉발시키지는 못했기 때문. 굳이 말하자면, 이 두 번째 의미의 "불가지론"의 맥락을 이어온 오늘날의 개념이 있다면 스티븐 제이 굴드가 "NOMA"개념 제시한 것과 그 목적에 있어서 약간의 유사성을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 >'''세 번째 의미''' >세 번째 의미에서 agnosticism이 오늘날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용례이다. 이 용례레서 '불가지론'이란 앞서 개요에 설명된 바와 같이 "신은 존재한다", 혹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들에 대하여 유신론과 무신론이 각자 "그렇다" 혹은 "그렇지 않다"는 답을 내는 것과는 달리, 해당 명제에 대한 확답을 피하고 유보하는 입장이다. 흔히 문외한들 사이에서도 신에 대해 "있다", "없다", "모르겠다"라는 직관적인 세 가지 태도를 관찰할 때, 바로 마지막의 '(아직은) 모르겠다'는, 양자 중 어느 쪽도 거부한 제3의 입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는 '불가지론'이며, 다시 강조하지만 현재 이쪽이 문외한, 철학자 할 것 없이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용례에 해당된다. 역시 [[불가지론]] 문서에도 기술되어 있지만 이미 1903년도에 철학자 로버트 플린트가 그의 서적 "Agnosticism"을 출판했을 때 그는 책을 통해 이 세 번째 의미에서 벗어나 "불가지론"을 달리 정의할 것을 제시했는데 (물론 이 시도는 학계에서 거부되었다), 그말인즉슨 헉슬리가 최초로 "agnosticism"을 사용한 것이 1869년이니, 대략 39년 후의 로버트 플린트의 시절엔 이미 철학계에서 이 세 번째 의미로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었다는 뜻이며, 늦어도 19세기 말부터는 이 정의가 확립되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본 문서의 앞 부분에서 "무신론"의 정의를 내렸을 때 단순히 "현재 신을 믿고 있지 않은 정신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명시적으로, 명제로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 주의주장'''임을 드러낸 것과 마찬가지로 '''불가지론 또한 그냥 단순한 정신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유신론," "무신론," "불가지론"은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각자의 믿음, 태도, 자세이며, "당신은 무엇을 믿습니까?"라는 질문에서 '''신이 있는지 없는지를 안다, 모른다는 어떠한 의미도 갖지 않는다.''' 따라서, "불가지론"이란 것은 단순히, "아, 신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으니까 난 불가지론" <-- 이러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해하기 쉽게 비유를 한다면, 탕수육을 먿는 방법을 두고 "부먹"파와 "찍먹"파가 있고, 부먹이 좋은지 찍먹이 좋은지 객관적으로 우위를 가리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중립"파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때 "탕수육"이란 음식을 처음 접해본 외국인에게 "당신은 부먹파냐 찍먹파냐?"라고 물었을 때 그 외국인은 "난 부먹이 좋은지 찍먹이 좋은지 잘 모르겠으니까 걍 '모르니까 견해 없음'"이라고 한다면, 이것이 "중립"파와 같은 범주에 있는가? 당연히 아니다. "중립"파는 "부먹"과 "찍먹", 대립하는 두 의견 양쪽 모두를 고려해봤고, 그럼에도 어느 한 쪽에 우위가 있다고 판단할 수 없다는 '''명시적, 명제적 의견'''이지, "걍 잘 모르겠으니까 아무런 견해가 없다"는 정신상태, 부정형 답변(negative answer)이 아니라는 것. 이를 다시 유신론, 무신론, 불가지론의 경우로 치환을 한다면: >'''문: "신은 있는가?"''' > >'''유신론''': "신은 있다." >'''무신론''': "신은 없다" >'''불가지론''': "신은 있다고도, 없다고도 답 할 수 없다"[* 고로, 1순위의 질문에 대해서는 유보할 수 밖에 없으며, 불가지론자의 믿음은 "현재 유신론도, 무신론도 참이 아니다"라는 두 견해에 대한 견해로서 "2순위의 믿음"이 된다] 이렇게 되는 것이지, >'''문: "신은 있는가?"''' > >'''유신론''': "신은 있다." >'''무신론''':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불가지론''': "모른다" ...이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위에서 무신론자와 불가지론자가 한 각각의 대답은 얼핏 생각하기에는 정확한 대답인 것 같아도, 실제로는 질문 "신은 있는가"에 '''전혀 직접적인 답변을 한 것이 아니고''' 엉뚱한 대답에 가깝기 때문. 왜냐하면, 유신론자에게 있어서는 "신은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나는 신은 믿습니다"가 간접적인 대답이 될 수는 있지만[* 어떤 존재가 없다고 믿는데, 동시에 그 존재를 믿는다는 것은 형용모순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비이성적인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무신론자에게 있어서는 경우가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신을 믿지 않습니다"라는 답변에는 신이 있는지, 없는지 그 견해에 대해 유추가능한 함의가 담겨있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답변은 무신론자가 자신의 무신론을 드러내는 구실을 하지 못한다. 신을 믿지 않는 그가 무신론자인지 불가지론자인지, 혹은 다른 주의주장을 갖고 있는 사람인지 전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대답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는 유신론자'''는''' 아니다"라는 것 뿐이다. 이런 "부정형 대답(negative answer)"은 어떠한 유의미한 기능도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가령, 배스킨 라빈스 31가지 맛 중 어느 맛을 좋아하십니까... 라고 묻는 질문에 "난 딸기맛은 좋아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격이다.) 또, 불가지론에 있어서 "어느 쪽도 대답할 수 없다"는 것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유신론이 옳은지, 무신론이 옳은지 고려해 본 결과 어느 쪽도 자신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불가지론자는 __'''"신은 있다"는 명제도, "신은 없다"는 명제도 참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현재 신이 있는지 없는지 답할 수 없다"라는 명제가 참임을 믿는 사람'''__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무신론도, 신이 있다고 주장하는 유신론도, 그리고 답을 유보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하는 불가지론도 모두 똑같이 "정당화의 의무 (burden of justification)"[* 흔히 신무신론에서는 "거증책임" burden of proof 이라는 용어를 오남용하는 경향이 있지만, "거증책임"은 법률적 용어, 개념이다. 주의주장, 믿음, 생각에 대해서는 거증책임이 아닌 "정당화의 의무"가 있을 뿐이다]를 지닌다.) 이 해설을 염두에 두고 다음의 설명, [[불가지론]] 문서의 "신에 대한 관점"에 나와있는 "무신론적/유신론적 불가지론"에 대한 --해괴한-- 설명을 읽어보자. >구체적으로는 "신적 존재에 대한 증명이 현재에만 불가능한 것인가 아예 불가능한 것인가" 대한 생각의 차이에 따라 아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인류의 미래를 통틀어서 아예 생각해 볼 필요가 없다"라고 할 것이고, 그 반대의 경우 "인식이 논한 수준이 될 때까지 유보한다"가 될 수 있다. 전자의 경우는 논리상 원론적인 불가지론이 된다. 잘못된 해설이다. 전자의 경우가 '원론적'이 아니라, 단순히 '오래 되어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 불가지론의 정의이기 때문. 신의 존재를 인간이 알 수 있냐 없냐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가와 무관하게 불가지론은 불가지론이고, 그런 생각이 불가지론자 사이에 어떤 유의미한 차이를 만들지도 않는다. "쌀 떡볶이를 좋아하는가 밀 떡볶이를 좋아하는가?"라는 화두가 주어졌을 때, "난 쌀 떡뽂이를 좋아한다"라는 사람과 "난 쌀 떡볶이를 좋아하지만 앞으로 밀 떡볶이를 좋아할지도 모른다"라는 사람이 주어진 화두의 맥락에서 차이가 있는가? --걍 아무도 관심 없는 쓸데없는 정보를 뒤에다 붙였을 뿐이지-- "신의 존재에 대해 인간이 알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주어진다면 물론 같은 불가지론자들 내에서 다양하게 견해가 갈릴 수 있지만, '''"유신론 or 무신론 or 불가지론" 셋 중 하나로 대답이 되는 질문은 그 질문이 아니다.''' >한편 논의를 긍정하는 후자의 불가지론은 유신론과 무신론에서 또 나뉘는데, 무신론적 불가지론은 "알 수 없으니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며, 유신론적 불가지론은 "개개인의 신념에 따라 알아서 하는 게 낫다"고 결론을 내린다. 잘못된 해설이다. 유신론, 무신론, 불가지론은 서로 별개로 존재하는 세 범주이며, 불가지론은 불가지론이지 그것이 "유신론적"일 수도," "무신론적"일 수도 없다. 불가지론에 "무신론적"이거나 "유신론적"이라는 구분이 붙으려면 이러한 믿음을 특정하게 되는 결정적인 무엇인가가 해당 불가지론에도 (이러한 용어정의를 하는 맥락과 기준 내에서) 공유되어 있어야 하는데, 위의 해설에서 그 기준은 무엇인가? 전자는 "난 불가지론자인데 신이 없다고 믿는다"는 것 부터가 해괴하기 짝이 없는데, "~의 유무를 알 수 없다면 없다고 믿는 게 합리적"이라는 소리는 결국 "난 불가지론자인데 신이 없다고 믿는다"라는 괴이한 소리일 뿐이기 때문이다. (부연 ; 대체로 이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과학적 입장과 개인적 신념을 구분하는 경우가 많다. 요컨대, 과학자로서는 창조론을 상정하지 않으나, 개인적으로 창조론을 믿는 경우, "난 과학자로서 불가지론자이나 개인적으로 신이 있다고 믿는다"는 식으로 치환하는 격) "신이 없다고 믿으면 애초에 불가지론자가 아니지 않은가?"라는 반론이 당연히 나올 수 있는 것이고, 그에 대해 흔히 나오는 대답이 '''"신의 존재여부를 알 수 없으면, 그냥 없다고 믿는 게 합리적"이라고만 했지, 내가 신이 없다고 믿는다는 소리는 안 했다'''라는 것은 대답을 기피하는 것이다. __상기 항목들에서 거론한 바로 그 자승자박__으로 인해 "신이 있다고 생각해, 없다고 생각해?"라는 간단한 질문에 직답을 못하게 된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바로 "무신론적 불가지론"이라는 괴상한 단어에 담겨 있는 것이다. 또, "신의 존재 여부를 알 수 없으면 그냥 없다고 믿는 게 합리적다"라는 것도 '''굉장히 비합리적인(...)''' 주장인데, 애초에 종교인에 대해 "확실한 경험적 증거, 우리가 통속적으로 '확증'이라고 부를만한 과학적 증거가 없이 신을 믿는 것은 비합리적이다"라고 선언한 것이 누구였는지를 생각해보자. '''"있다는 과학적 확증이 없는데도 믿음을 갖고 있으면 비합리적"이라고 해 놓고서는, "없다는 과학적 확증이 없는데도 없다는 믿음을 갖는 것은 합리적이다"라는 것은 대체 어느 논리학에서 나온 발상인 것인가?[* 완벽한 특별변론의 오류에 해당된다]''' '''합리성의 판별기준을 경험론적 증거를 통한 확증만으로 한정 짓는다면, 모르는 것에 대한 유일한 합리적인 태도는 "모른다"일 뿐이다.''' 대체 신무신론의 어디에서 이러한 비합리적인 사고방식이 나왔는지는 추후 별도로 서술한다. >이런 식으로 같은 불가지론이라도 여러가지 부분에서 입장이 갈린다. > >위에서 말했듯 불가지론은 일단 "존재 여부를 알 수 없다"라는 게 대전제이고, 무신론적 입장도 많아 불가지론자 중에는 비종교인이 많다. 유신론적 입장이라 할 지라도 비종교인적 입장에 가까운 편이라 비종교인인 경우가 많다. 이 경우는 뭔가 영적인 존재가 있을거라 믿기는 하지만 딱히 종교는 믿지 않는 케이스가 대표적이다. 잘못된 해설이다. 신에 대해 알 수 있다 없다는 불가지론을 규정하는 어떠한 전제도 아니다. "과학이나 뭔가 다른 연구학문이 언젠가 더 발전하면 미래에 신에 대해서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현재 불가지론자일 수도 있기 때문. 즉, "신에 대해 알 수 있다/없다"는, 다시 반복하지만, "~론"의 정의를 내리는 것에 어떠한 역할도, 연관성도 없다. 읽어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설명이 잘못된 내용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용어사용이 역사적 어원도 없고, 철학계에서도, 신학계에서도, 다른 연관된 형이상학계에서도 사용된 바 없으면 익히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대체 밥벌어먹고 사는 직업으로 이 분야를 평생 공부하는 전문가, 학자들이 고전시대나 중세시대에서 논의한 적도 없고, 근대 현대 시대에 논의한 바도 없고, 2010년까지는 찾아볼 수도 없었던 이런 괴이한 설명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또, 보다 중요하게는 '''대체 왜''' 이러한 말도 안되는 해설이 인터넷상의 신무신론에서 중요한 철학적 이론인양 유포되고 있는 것인가? 그 해답은 본 문서의 항목 중에서 해설한, '''무신론을 "신이 없다는 믿음"이 아니라 "현재 신을 믿고 있는가의 여부"로 자의적으로 재정의한 행동'''에서 파생된 것이다. 즉, 상기 항목의 "불가지론적/가지론적 무신론자"와 같은 맥락에 있다. 멋대로 "무신론자"의 정의를 바꾼 결과, "그럼 불가지론자와 뭐가 다른 것이며, 기존의 무신론자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라는 반론에 대해 "불가지론적/가지론적 무신론자"라는 급조어를 새로 만든 것은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이 항목의 "무신론적/유신론적 불가지론자"라는 급조어는 위의 경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아예 "불가지론"의 의미조차 바꿔버린 것이다.''' 신이 없다는 확실한 생각을 표명하지 않았던 기존의 불가지론자들은 모두 무신론자들로 만들어버리고, 아예 "불가지론"의 정의조차 '''"불가지론은 신에 존재 여부에 대해 인간이 알 수 있는가 없는가의 질문에 대해 "알 수 없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이는 [[불가지론]] 항목에 있는 용어정의에서도 확실히 기술되어 있는 것처럼, 이미 100년도 넘는 예전부터 사용이 중단 된 용례라서 이미 20세기 초반부터 "불가지론"은 오늘날 철학에서 사용하는 용례가 자리잡혔다. 위와 같은 무리수들을 종합해보면 이게 얼마나 괴상한 것인지 한 눈에 드러난다. "불가지론적 무신론자 Agnostic atheist"라는 정의와 "무신론적 불가지론자 atheistic agnostic"라는 정의는 신무신론자들이 흔히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야매-- 용어들인데, 만약 저 용어정의 방식을 서로 나란히, 같이 사용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가? 리처드 도킨스와 같은 사람은 "신무신론자"로 세간에서 불리우고, "무신론계에서 중요한 인물"이라고 무신론계 내외 모두에게 인정을 받으며, 본인도 --사실은 불가지론자인데 입장 상-- "나는 무신론자입니다"라고 얘기한다. 이는 불가지론적 무신론자라는 말인데, 위의 용어정의에 따르면 또한 동시에 무신론적 불가지론자가 된다. '''그러면 대체 도킨스는 무신론자인가, 신무신론자인가, 불가지론자인가, 불가지론적 무신론자인가, 무신론적 불가지론자인가?''' '''"그 전부에 해당된다"라고 답할 것이라면 대체 이딴 식으로 정의한 용어를 누구보고 써먹으라는 말인가?''' 학계의 표준적인 정의를 사용한다면, 매우 깔끔하게 그냥 무신론자다. 굳이 첨언을 한다면, 신무신론이 대중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한 무렵에 "사천왕" 도킨스, 해리스, 데닛 등은 그들 모두가 숱하게 반복하는 언동에서 전통적인 의미로 "신이 없다고 믿는" 무신론자임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문제는 신무신론 관련 항목에서 해설했듯 이들은 각자 자기 분야의 전문가들이었지 신학자도, 철학자도, 이런 쪽의 인문학적 바탕이 없던 사람들이다보니 종교가 근본적으로 비합리적이라는 공격을 위해 "과학적으로 확증되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은 비합리성"이라는 기준을 도입했고, 그로 인해 자승자박에 걸린 것 또한 설명한 바와 같다.(부연 ; 위 서술에서 데니얼 데닛도 철학자도, 인문학적 바탕이 없던 사람이라고 똑같이 치부했으나 그는 전문 철학자이며, 인문학적 바탕이 없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경험적인 증거들 뿐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가지 유추의 방식, 연상 등도 합리적인 자기정당화의 수단일 수 있음"을 전혀 인정하지 않다보니 본인이 신이 없다고 믿는 무신론자이면서도 대중토론이나 논쟁 등에서 이 부분을 파고 든 반론에 대해 "물론, 저도 신이 없다는 과학적 증거는 없으니까 엄밀히 말한다면 신이 있는지 없는지를 모르는 불가지론자입니다만..."이라면서 신무신론계에서의 용어혼동과 자의적 용어정의의 남발에 불을 지핀 것이다. (부연 ; 다만, 이러한 용어혼동과 자의적 용어정의는 신무신론이 유행하기 이전부터 기독교 근본주의, 정확히는 학술적 이해도가 떨어지는 유신론자들 사이에서도 흔하게 있어온 일이었다. 불가지론을 무신론의 일종 혹은 무신론으로 가는 지름길로 치부하여 불가지론자에 속하는 철학자나 과학자들을 무신론자로 치부하는 경향은 유신론자들 사이에서도 적잖게 존재한다. 그래서인지, 신무신론의 용어혼동이나 자의적 용어정의들의 유래를 찾아보면 그런 유신론자들의 용어혼동이나 자의적 정의에서 유래하는게 적지 않게 존재한다. 신무신론은 유신론자들의 유신론에 대한 이해부족을 지적하면서도 정작 그들 자신은 그들이 비판해온 유신론자들이 잘못 쓴 용어를 그대로 차용했다는 사실은 신무신론이 학술적 사회운동이라기 보다는 기성종교의 반감에서 유래한 안티운동에 지나지 않음을 드러낸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종교는 폐단이며 인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피력을 위해 활동하니까 무신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라는 식으로 --이번에는 반신론, 반종교론과 무신론을 혼동했고-- 대답을 함으로써, 무신론자 코스프레를 하는 불가지론자 코스프레를 하는 사실 진짜 무신론자... 가 된 것. 이들 유명인사들의 이러한 삽질을 "그들의 활동은 존경하지만, 그들이 얘기한 이 부분은 좀 문제가 있네"라고 받아들이고 넘어가면 되는 문제였는데, 그러지 못하고 그 신무신론 유명인사들을 아이돌화하고, 그들이 강연 등에서 하는 말, 써먹는 말을 그대로 자신의 논지로, 밈으로 만들어 그것만 갖고 반종교, 반기독교 주장을 펼치려다보니 이러한 해괴한 지적 자폭에 이르르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쉽게 정리하자면, 왕성한 대중활동을 하고 있던 유명인사들이 개인적으로 부족한 부분들, 얕은 지식으로 인해 잘못된 얘기를 했는데, 그것을 지나치게 숭배하고 전적으로 받아들여 자신들도 똑같이 써먹으려다가 엄청난 지경의 [[더닝 크루거 효과]]에 빠져버린 것이다. 신무신론자라는 사람들이 과연 무신론자인지 불가지론자인지, 대체 무엇을 주장하는 것인지. 하는 언동은 분명히 무신론자 같은데 말로는 본디 불가지론자라고 해놓고서는, 다시 또 "하지만 입장상, 도의적으로 무신론자인..." 이런 소리를 하고 있으니, 태도가 분명치 못하다거나, 제대로 모르고서 하는 소리 같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 인터넷 시대에 도달한 그들의 지지자들은 '''그 모든 정의를 다 뒤섞어버려서 그들이 한 말이 모두 동시에 성립될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모순을 해결하고자 한 결과이다.''' --그럴 바엔 걍 공부를 하지-- 당연히 동시에 성립할 수 없는 서로 다른 개념, 주의, 주장들을 어떻게 동시에 성립되도록 할 수 있는가? (부연 ; 애시당초 신무신론이라는게 9/11 테러를 기점으로 일어난 반종교 정서에 편승한 일종의 유행에 가깝기 때문에 개념, 주의, 주장들에 엄밀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철학적인 무신론적 신념을 갖고 있었다기 보다는 종교적 반감에 기반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신무신론이라는 명칭 자체가 신무신론에서 스스로 붙인 이름이라기 보다는 21세기 들어 유명한 무신론 작가들의 팬덤 활동에 대해 외부에서 붙여진 명칭이다. 역설적으로 그렇게 외부에서 붙여진 이름 하에서 일종의 진영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실체를 갖는 사회운동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시류에 편승한 문화논쟁이였고 근본이 없었기 때문에 그 이상의 파급력은 존재하지 않았다.이에 대해선 2010년 올라온 칼럼 왜 나는 신무신론을 믿지 않는가에서, 톰 플린은 소위 "신무신론"이라는 것이 새롭지도 않을 뿐더러 어떤 운동조차 아니며, 신무신론에서 새로운 것이라고는 오직 무신론에 대해 다룬 출간물이 유명 출판사에서 간행되고, 그것이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읽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왔다는 사실뿐이라고 주장했고, 이에 대해서는 크리스토퍼 히친스 역시 "신무신론에 새로운 것은 없으며 단지 최근에 일어났을 뿐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리처드 도킨스와 같이 "무신론 대빵" 정도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에도 번역된 그의 저서인 [[신은 위대하지 않다]]에서는 신 존재증명을 부인하거나 신의 부재를 주장하는 내용은 없다. 해당 책의 내용은 100% 신의 이름으로 벌어진 악행 - 즉 종교의 해악 - 을 지적하는 것이다. 오히려 해당 책에서 리처드 도킨스다 '''나는 이런 잘난척하는 부류를 마냥 긍정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원래 의미를 모두 파괴하고, 자의적으로 새로운 의미를 구정하고, 그것을 모호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서, 아무 때나 서로 용어를 치환해도 성립할 수 있도록 만들면 되는 것이다.''' (부연; 신무신론 진영에선 과학적 사고를 중시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주장을 펴는 경향이 많은데, 과학적 사고란 결국 귀납논리적이고 때문에 잠정적이고 그것이 반드시 참이라는 걸 보장하진 않는다. 문제는 이들이 믿음이나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해서도 과학적 사고를 견지하는데, 이건 본인들의 신념도 예외가 아니다. 요컨대, 이들에겐 무신론은 참이라는 피상적이고 막연한 신뢰감은 존재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참이라는 신념은 존재하진 않는다. 왜냐하면 과학이란 귀납논리를 기반으로 하며, 귀납논리에선 그 어떤 결론도 결국은 필연적으로 그것이 참임을 보장하진 않는 잠정적 결론이다.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신념에 대해서도 연역적이라기 보다는 귀납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과학적으론 불가지론을 주장하면서도 개인적으론 무신론자라 칭하는 이중적 입장태도를 보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