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신정변 (문단 편집) === 후일담: 무신 정권과 권력자의 교체 === * 자세한 내용은 [[무신정권]]과 각 권력자들 개개인의 문서를 참고할 것. 1170년에 시작된 무신 정변 이후 주동자들인 정중부와 이고, 이의방에 의해 [[무신정권]]이 유지되었다. 그러나 1171년에 [[이의방]]이 자신의 뒤통수를 치려던 [[이고]]와 동료 채원 등을 싸그리 죽이고 자신의 권력을 강화해나갔다.[* 일설에는 이고가 십팔자위왕을 믿고 왕위를 노렸는데 그로 인해 죽었다고도 한다.] 무신들의 실질적인 리더였던 정중부는 고속 승진하여 1173년에 정승의 반열인 문하시중까지 오르면서[* 이 때문에 이의방의 집권기를 정중부의 집권기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계속 무신들의 리더 및 집권자 역할을 하였으나, 세력이 강해진 이의방을 경계하기도 하는 등 무신 내에서는 권력 다툼과 분열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으며 무신들도 자신들의 원수였던 [[문벌귀족]]만큼이나 타락하여 탐욕을 절제하지 못하고 방탕한 생활을 즐겨 국가적으로 큰 반감을 사게 되었다. 고려 왕가와의 혼인을 획책하기도 할 정도로 야심이 커졌던 이의방은 1174년 [[조위총]]의 난에서 패배하고 복귀하던 중 정중부의 아들 [[정균]]이 보낸 승려 종참 등에 의해 암살당했다.('''갑오정변''') 이후 정중부가 독주하는 세상이 오자 그의 아들인 정균 역시 방자한 생활을 하며 전횡을 부렸고 공주를 자기의 아내로 눈독을 들일 정도로 막장 행각을 이어갔다. 결국 1179년에 새로운 인물인 [[경대승]]이 '''기해정변'''을 일으켜 [[정중부]]와 사위 [[송유인]], 그리고 [[정균]]을 몽땅 죽이고 권력을 틀어쥐면서 고려의 무신 정권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그러나 4년 만인 1183년에 경대승이 젊은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이듬해에 경대승의 위협으로부터 몸을 피해 경주로 낙향했었던 [[이의민]]이 돌아와 권력을 잡으며 무려 13년 동안 국정을 어지럽히고 사사로이 왕실의 재물을 탐하는가 하면 권력욕에 취해 문하시중의 지위에까지 올라 전횡을 일삼는 등 전횡을 부리다가 1196년에 [[최충헌]]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병진정변'''). 이후로는 오랫동안 최충헌과 그 후손들이 집권하며 무신 정권의 절정기를 맞이한다. 그러나 내부 부패에 이은 1231년에 시작된 [[몽고]](몽골)의 침입으로 인해 고려는 혼란으로 빠져들게된다. '''무오정변'''으로 몰락한 최씨 일가 이후로도 1258년에 등장한 [[김준(고려)|김준]]과 1268년 '''무진정변'''으로 집권한 [[임연]], [[임유무]] 등이 있었지만, [[원종(고려)|원종]]이 무신들을 시켜 임유무를 처단함으로써('''경오정변''') 1270년에 무신 정권은 끝이 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