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왕(발해) (문단 편집) === 2차 침공 - 마도산 전투 === 그러자 무왕도 가만있지 않고 다시 제2차 당나라 침공전에 나섰다. 이미 당군이 쳐들어올 것이 분명하기에 그전에 먼저 선제공격을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733년 만리장성 바로 앞 [[https://www.google.co.kr/maps/place/Dushan+Mountain/@40.2009413,117.6421214,7z/data=!4m5!3m4!1s0x358b2e5dead74f99:0xb1cf52db2da3ba73!8m2!3d40.518046!4d118.791051!5m1!1e4?hl=ko|마도산]](이후 '도산'으로 바뀜)으로 발해군은 거란과 연합하여 진격했다. [[마도산 전투|마도산 공격]]은 제1차 공격과는 달랐다. 이번에는 무왕이 직접 친정에 나서 진두지휘했다. 이 전쟁에서 당군은 큰 손실을 입었다.《구당서》엔 당군 6,000명, 《신당서》엔 당군 10,000명이 죽었다고 기록되어있다. 《[[신당서]]》 <오승자전>의 기록을 살펴보면 >"발해 무왕 대무예가 군사를 이끌고 마도산에 이르러 성읍을 점령했다." 고 되어 있다. 이러한 때 당나라 조정은 발해의 침공을 막는다고 정신이 없었다.《자치통감》을 보면 "대문예를 유주로 보내, 군사들을 징발케 하여 싸우게 하는 한편, 유주절도사로 하여금 '하북채방처치사'를 겸하게 하고 상주, 낙주, 패주, 기주, 위주 등 16개주에 이르는 주와 안동도호부(평주)의 병력까지도 통솔케 했다"고 한다. 당시의 기록을 통해 당 조정이 발해군의 공격에 대해 얼마나 긴장했던가를 확인하게 된다. 즉, 발해군이 당 조정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일종의 전면전과 같은 정벌전쟁을 펼친 셈이다. 또한 당현종은 발해 무왕이 [[만리장성]]을 넘어올 것을 걱정해서 마도산에 새로운 병력을 투입한다. 그리고 당군은 큰돌로 요충지를 필사적으로 막아내며 가까스로 발해의 진격을 저지하는데 성공한다. 그렇게 전쟁은 생각보다 흐지부지 마무리되지만, [[마도산 전투]]를 계기로 당나라는 신생국쯤으로 얕잡아본 발해를 다시 보기 시작했고, 발해 역시 국가적 자신감을 얻고 그에 걸맞은 새로운 정책들을 추진해나간다. 당장 2차례의 당나라 침공 후, 무왕은 [[https://www.google.co.kr/maps/place/Xigucheng,+%ED%97%88%EB%A3%BD+%EC%8B%9C+%EC%98%8C%EB%B3%9C+%EC%A1%B0%EC%84%A0%EC%A1%B1+%EC%9E%90%EC%B9%98%EC%A3%BC+%EC%A7%80%EB%A6%B0+%EC%84%B1+%EC%A4%91%EA%B5%AD/@42.4093476,126.6873775,7z/data=!4m13!1m7!3m6!1s0x5e355703826e4371:0x7844a303e7bc76b0!2zWGlndWNoZW5nLCDtl4jro70g7IucIOyYjOuznCDsobDshKDsobEg7J6Q7LmY7KO8IOyngOumsCDshLEg7KSR6rWt!3b1!8m2!3d42.712232!4d129.153894!3m4!1s0x5e355703826e4371:0x7844a303e7bc76b0!8m2!3d42.712232!4d129.153894!5m1!1e4?hl=ko|중경 서고성]]으로 수도를 옮겼다. 발해의 땅이 넓어졌기 때문에 국가 규모에 맞게 중경(현주 서고성)으로 옮긴 것. 현주는 이전 수도 동모산에 비해서 날씨가 적당하고 강이 흐르는 넓은 분지 지역이라 주변 여건이 좋았다. 지금의 연변 조선족 자치구에 해당된다. 이후 당은 발해의 내정에 쉽게 간섭하지 못했고, 무왕은 국정을 독자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다. 발해의 당나라 정벌은 신생국이지만 절대 강대국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 결과 발해는 당시 동아시아의 강대국인 당나라도 쉽게 넘보지 못하는 동아시아의 새로운 강국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후 발해는 전쟁의 발단이었던 흑수말갈 정복을 마무리짓고 후방을 안정화시킨다. 흑수말갈은 이때 발해에 복속됐지만 이후로도 발해인 주류와 이질적인 정체성을 유지했고 발해의 지방 지배가 약화되는 9세기 말에 떨어져나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