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제(남진) (문단 편집) === 미천한 집안에서 출세하다 === 천감 2년(503년)에 [[진문찬]](陳文讚)[* 태조(太祖) 경황제(景皇帝)로 추존.]과 동씨(童氏)[* 안황후(安皇后)로 추존.]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오흥군(吳興郡) 사람이다. 그의 10대조 [[진달(서진)|진달]](陳達)은 영천 사람이었으나, [[서진]] 말기 [[영가의 난]] 때 [[강남(중국)|강남]]으로 이주하여 장성령이 되었으며 그의 조상들은 대대로 장성에 살며 산수를 즐겼다. 이에 [[동진]] 때 시행된 토단법에 따라 장성 사람이 되었다. 조부 [[진도거]](陳道巨)는 관료를 지냈지만 아버지 진문찬의 기록은 거의 없다. 진패선의 키는 7척 5촌[* [[자(단위)|척]]은 시대마다 길이가 달랐고 보통 후한시대 23 cm 정도로 본다. 따라서 후한시대를 기준으로 미터법으로 환산해보면 173 cm 정도가 된다.]이었으며 어릴 때부터 원대한 꿈을 품었고, 다른 사람들과 달리 모략에 뛰어났다. 영웅의 기백이 있었으며 장성해서는 역사책과 병서를 탐독하고, 무예에 능하며 사리에 밝고 과단성이 있어서 칭찬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진패선은 출신이 미천하여 시골 이장으로 있다가 수도 건강으로 가서 기름 창고 책임자가 되었다. 하지만 대동 연간에 오흥 태수 소영의 인정을 받아 소영이 광주자사가 되자 진패선은 중직병참군이 되어 참모가 되었다. 얼마 안 되어 서강 독호, 고요 군수가 되었다. 대동 8년(542년)에는 반란을 평정하여 [[무제(양)|양무제 소연]]의 칭찬을 받고 직각 장군, 신안 현자가 되었다. 소연은 화공을 시켜 진패선의 얼굴을 그리게 하여 그의 생김새를 보고 감탄했으며 교주 사마, 시흥 태수로 승진시켰다. 이후 544년 교주지역에서 황제를 참칭한 [[천덕제|이분]] 세력을 격퇴시키는 공을 세웠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