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제(남진) (문단 편집) == 사후 == 진패선 사후 진패선의 유일한 아들이었던 진창은 서위(535~557)를 이은 북주(557~581)에 붙들려 있었다.[* 과거 서위가 강릉을 함락시킬 때 포로로 잡혀 장안에 인질로 있었다.] 이때 가장 가까운 친척이자 조카인 진천(陳蒨)이 남환(南皖)의 요새에 있었는데 무선황후는 두릉(杜稜), 채경력(蔡景歷) 등의 건의에 따라 진패선의 죽음을 공표하지 않고 비밀리에 진천을 불러들였다. 관료들은 진천을 황제로 삼으려 했으나, 정작 무선황후는 북주에 인질로 있는 진창이 돌아올 것을 기대하면서 계속 주저했다. 그러나 [[황제]] 자리는 계속 비워둘 수 없어서 결국 진천이 황제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