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제(북주) (문단 편집) ==== 호화정책 ==== [include(틀:위진남북조시대 북조의 민족 및 문화정책)] 북주의 영토인 관중 지방은 [[북제]]의 영토인 관동 지방에 비해 굉장히 낙후된 지역이었다. 북제 인구 약 2,800만 명, 북주 인구 약 1,100만 명 정도였다. 그래서 당시 백성들을 하나로 단결시킬 수 있어야만 했다. 이로써 시작된 정책이 '''호화(胡化)정책'''이었는데, 원래 서위의 [[우문태]]가 시작한 정책이었다. 우선, 북위의 [[효문제]]가 황성인 탁발(拓跋)씨를 원(元)씨로 개칭한 것처럼 한성(漢姓)을 호성(胡姓)으로 개칭했고, 그들을 크게 우대했다. 예를 들어, 우수한 관료였던 유경은 우문씨, 구순은 약구인씨, 소숙은 을불씨로 성을 바꾸었다. 또 이러한 방식으로 한족을 선비화시켜서 강대한 군사력을 만들었다. 북위시대에 한화정책으로 많은 선비족이 한족화되었고 결국 선비족과 한족은 하나로 단결되었다. 이는 어떤 면에서는 민족 모순을 격화시킬 여지도 있었다. 그러나 관중의 한족 사족 집단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기 때문에, 이들을 통치집단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이렇게 선비족과 한족이 만나 형성된 북주의 새로운 정치 세력을 '''[[관롱집단]]'''(關籠集團)이라 부르는데, [[수문제]] 양견, [[당고조]] 이연 역시 이 관롱집단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호화 정책으로 인해 북주만의 새로운, 위진시대를 넘어선 문화가 형성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