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한도전/2009년 (문단 편집) == 평가 == 2009년을 기점으로 독립 편성 초창기([[2006년]] ~ [[2008년]]) 무한도전의 아이덴티티였던 리얼 버라이어티 요소, B급 정서가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직전해까지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특집과 아이템을 많이 선보였으며 무한도전이 타겟 시청 연령대를 전 연령대에서 '''젊은층으로''' 노선을 변경한 시기가 '''바로 이때이다.''' 이런 영향으로 2008년 이전까지 주 컨셉이었던 B급 정서와 유치한 상황극, 단순 몸개그가 눈에 띄게 소멸되기 시작하고, 젊은층이 공감할 만한 최신 유행어의 반영으로 프로그램 스타일을 낡은 분위기에서 세련된 모습으로 변경했다. 그래서 멤버들의 프로그램 내 역할도 더욱 풍부해졌다. 또한 추격전이 큰 주목을 받은 해이기도 했는데, 전년도에 사상 처음으로 선보인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특집 당시에는 추격전이라는 개념이 아직 완벽히 성립되지 못했기 때문에 추격전이라기보다는 멤버들의 콩트 상황극에 가까웠지만 여드름 브레이크와 나 잡아봐라 특집이 호응을 얻자 2009년을 기점으로 무한도전에서의 추격전은 단골 아이템으로 쓰일 정도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홍철]]이 추격전을 통해 본격적으로 사기꾼 캐릭터로 자리잡은 시기 역시 이때이기도 하다. 그래서 추격전이라는 하나의 장르에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큼 스케일이 커지기 시작했다. 정리하자면 '''초창기 무한도전의 B급 감성과 현재 무한도전의 분위기가 공존했던 과도기 시즌이었으며''', 이런 이유 때문에 무도 팬들에게 현재까지도 많은 회자를 낳고 있는 시즌이기도 하다. B급 정서를 좋아하는 팬들은 무도 초창기 때부터 2009년까지를 무도 최고 정점으로 여긴다. 이해 4월 이후에 [[길(가수)|길]]의 등장을 계기로 기존 6인 체제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7인 체제가 시행된 해이기도 했으며, 연도로 따지면 [[하하(가수)/무한도전|하하]]가 무한도전에 없었던 유일한 해이기도 했다. 한편 지난해 여름에 영입되어 적응을 해 가던 전진은 2009년 들어 건강 문제, 개인 사정과 부상 등으로 인해 프로그램에서 자주 이탈하여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출연 분량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후 사회복무요원의 임무를 하기 위해 10월 31일 벼농사 마지막 편 방영분을 끝으로 완전히 하차하며 더이상 등장하지 않게 되었고, 하하가 복귀하는 이듬해 3월까지 6인 체제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반면 새롭게 영입된 길은 부진한 전진의 자리를 잘 커버하며 괜찮은 활약을 펼쳐 팀의 분위기를 유지하는데 일조했다는 평을 받았다. [[정형돈]]의 무한도전 내 존재감이 슬슬 올라가기 시작한 것도 이 해이다. 2006~2008년 막 버라이어티에 데뷔해 적응기간이 필요했던 지라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던 정형돈이 인생극장 Yes or No 편부터 큰 활약을 하더니 무도 내에서 존재감을 어필하기 시작했고, 다음해에 미존개오 캐릭터를 장착하며 기량이 만개하게 되는 기반을 닦았다. 이런 긍정적인 효과들을 통해 지난 해의 부진을 이겨내고 본격적인 2007년, 2011년 다음으로 무한도전의 전성기 시즌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9년은 무한도전에서 제2의 전성기가 시작된 기점이 된 해로 평가한다. 이유는 전년도에는 멤버 교체와 방송을 진행하는데 생긴 악재, 멤버 불화 등 여러가지로 부진했던 시기로서 1차 전성기가 막을 내리고, 동시에 무한도전 내에서도 매우 혼란스러웠던 과도기 시기였지만 2009년부터는 새로운 프로그램 포맷이 자리를 잡기 시작해 안정화된 상태로 한해를 출발했기 때문에 레전드 특집이 다수 나올 수 있었다. 레전드 에피소드를 보면 봅슬레이로 한해를 시작해 정신감정, 육남매, 인생극장 Yes or No, 하루만에 세계일주, 손에 손잡고, 박명수의 기습공격, 여드름 브레이크, 올림픽 대로 듀엣 가요제, 소원을 말해봐, 해양구조대, 여름방학 특집, 꼬리잡기, 무한도전 TV, 벼농사 특집, 식객 특집, 뉴욕 특집 까지 수많은 다채로운 레전드 에피소드가 다수 나와 프로그램의 부진을 이겨내고 새로운 전성기가 시작된 것이다. 2008년 이전의 무한도전은 아직 프로그램 포맷이 완벽히 자리잡기 이전인 향후 방향성을 제시하는 초창기 시기라 현재보면 유치하게 느껴지면서 다소 옛날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2006년부터 2008년까지는 일부 특집을 제외하면 딱히 기억되거나 회자되지 않는다. 하지만 2023년 현재 시점에서 무한도전의 레전드 에피소드는 다수 2009년 이후에 몰려있고, 개그 코드가 현재 시점에서도 거의 위화감이 없으며 스마트폰 보급 이전의 시대상을 볼 수 있는 시기이면서 추격전과 야외 촬영을 통해 당시 시대적 분위기를 잘보여주었고, 또한 옛날 배경에 맞게 HD 방송 이전의 좁은 화면과 구린 화질의 레트로풍이 나는 이유로 추억까지 제대로 선사하기 때문에 2009년을 최고의 레전드 시기로 평가하는 것이다. 현재 유튜브에 업로드된 무한도전 조회수를 보면 대다수 2009년 이후의 특집들이 압도적으로 높으며 초창기(2006~2008년)때의 자리를 잡아가는 혼란스러운 분위기에서 벗어나 우리가 흔히 아는 무한도전의 분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해로 정리할 수 있다. 여담이지만 2009년은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직전이었던 시절이기 때문에 옛날 시대상을 느낄 수 있는 마지막 해이기도 하다. 2010~2011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스마트폰이 보급되어 스마트폰으로 판도가 바뀌었기 때문에 현재와 시대적으로 별 차이가 나질 않아 딱히 옛날 시대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생활 면에 있어서 2009년은 2023년과 비교해 차이가 꽤 크게 나지만 스마트폰이 보급된 2010년 이후는 현재와 거의 비슷하다.] 다만 여성의 날 특집, 2009 서바이벌 동거동락 등 최악의 에피소드도 있었고, 갈수록 장기 프로젝트가 많이 진행되어 프로그램이 늘어지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장기 프로젝트는 봅슬레이 특집, 달력 특집, 벼농사 특집, 식객 특집, 레슬링 특집 WM7까지 총 5개가 진행되었고, 이 중 달력 특집과 레슬링 특집은 1년에 걸쳐 진행됐다. 하반기부터는 멤버들이 "일주일에 무한도전만 5번을 찍는다"며 피로 누적을 호소했으며, 신입 멤버 길의 "이걸 어떻게 5년을 했지?"의 한마디로 요약 가능한 살인적인 스케줄이었다. 즉 각 에피소드 사이 재미의 편차가 큰 시즌. 특히나 연말의 뉴욕 특집은 4박 5일 일정 내에 6주 분량의 방송촬영을 하는 등 출연진에게나 제작진에게나 고행의 시기였다고 회자되고 있다.[* 후에 박명수 & 정준하 & 정형돈이 회고하길, 하루에 2시간 정도만 수면을 취하고 나머지는 전부 촬영에 올인하는 초강행군이었다고 한다. 어찌나 힘들었던지 녹화중 쓰러지는 스태프들도 있었고, 멤버들 또한 신경이 예민해져 고농도 카페인 음료를 권장량 이상 마시며 이를 악무는 심정으로 버텼다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