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묵향 (문단 편집) === 시대상 === [[북송|송]]나라라는 이름을 쓰는 걸로 볼때 대충 '''북송''' 시대를 배경으로 설정해놓은 듯하지만, 역사고증에서는 [[대체역사소설]]을 초월하는 황당함을 보여준다. || [[파일:FElEjtY.png|width=100%]] || ||중앙 흰색이 북송, 연한 회색이 요, 짙은 회색이 서하, 중앙 노란색이 연운16주[* 한반도 위의 연두색이 여진에 가깝고, 요나라 위에 붉은색으로 테두리 쳐진 부분이 현재의 몽골공화국인데 그 중에서도 북쪽 지역에 몽골부가 있다.]|| * 일단 북송 시대인데, 북송 주제에 [[몽골]]에까지 병력을 보낸다. 송나라를 흔히 북송과 남송으로 구분하는 것은 [[정강의 변]] 이후부터이고 그 이전에는 중원 전체가 송나라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송나라의 저력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쳐도 북방 거의 전역에 미치던 [[요나라]]의 영향력을 감안할 때[* [[만부교 사건]]이라든가 [[서희]]의 [[강동6주]], [[여요전쟁]]이 괜히 발생한 게 아니다.], 송나라가 몽골을 공격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오대십국시대]]에 요나라가 차지한 영역인 [[연운 16주]](상단지도에서 노란색으로 표시된 부분)는 북송의 알파이자 오메가였다. 이후 송이 벌이는 장대한 외교적 삽질[* 연운16주를 수복하기 위해서 요나라 치겠다고 여진족과 손잡았다가, 요를 멸망시킨 [[금나라]]와의 전쟁에서 [[정강의 변]]이 일어났고, 다시 금나라 치겠다과 손 잡은 곳이 몽골. 이번에는 송나라 자체가 망했다. [[고려]]시대 등거리 실리외교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 있을텐데, 이게 가능했던 배경이 바로 송나라가 연운16주 회복에 혈안이 되었기 때문이다. 송은 송대로 연운16주를 회복하기 위해서 고려와 군사적 동맹을 맺고 어떻게 해보려고 했고, 요와 금은 연운16주를 유지하면서 뒤탈을 없애고 송으로 내려가려고 고려를 침공하기도 하고 외교관계를 맺기도 하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히도 금과 전쟁은 치르지 않았지만, 대신 [[이자겸의 난]]에 이어 [[서경천도운동]]에 [[무신정변]]이 일어나며 고려의 국운도 쇠했고 바로 [[몽골 제국]]이 들어서며 [[유라시아]] 죄다 폭망...] 이 모두 이 연운16주를 수복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몽골 정벌할 여력이 있다면 연운 16주 회복을 위해서 동원해야 한다. 이런 문제가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은 작가가 송을 단일한 개체로, 그리고 상대한 국가도 단일하게 보면서 시간 격차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요와 금이 사실상 하나처럼 취급되면서 몽골의 시간개념도 뒤틀려 버린 것이다. 게다가 당시 몽골에 대한 지리적 고증도 잘못됐는데 원래 시대대로라면 몽골에 병력을 보낸다는 소리는 북송시대 아웃오브안중 급의 유명도를 가진 몽골[* 애초에 징키스칸이 소속되는 몽골부는 차치하고 인근 지역이 중국 역사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하는 것은 금과 몽골간의 문제 때문이다. 요나라 시기에는 몽골의 역할을 이후 금으로 성장하는 여진이 하고 있었고, 몽골은 송과 제대로 접촉한 적이 없어서 별도의 이름도 없었다.]을 치러 몽골고원 북부 끝의 남부 시베리아에 있던 몽골족에게 서하나 요나라를 통과함은 물론이고 만리장성 북쪽의 다른 유목민들도 통과하며 간다는 소리다. * [[칭기즈 칸]]의 어머니에게 멋대로 "하부르"라고 이름붙였다. 항의가 들어오자 '''작가는 "하부르라는 이름이 더 이쁘니까 그렇게 할래요."라고 대응했다'''. 결국 출판본에서 '결혼하고 이름을 호에룬으로 바꿨다'라고 타협. * 남송시대에 나타난 [[전진교]]가 이미 전설상의 문파가 되어 있다.[* 고증상 무리가 없다. 묵향에 나오는 부분은 전진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하는 설정이므로, 전진교의 역대 조사들의 기록이 남아있다느니, 구처기가 실존인물이니 하는건 아무 의미가 없다. 전진교가 생기기 전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전진교가 생긴 이후에 등장한 인물인 구처기의 실존여부가 무슨 상관인가. 왕중양은 과거공부하다가 갑자기 입산수도하고 도를 깨달아 전진교를 차렸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 부분을 왕중양이 무너진 비밀문파 전진파에 들어가서 배우다가, 전진파의 공부를 도가사상과 결합시켜 전진교를 창시했다는 설정이라고 한다면 아무 문제 없다. 특히 혈마가 "왕중양이라고 싹수가 있는 놈이 있는데, 종종 가서 가르치고 있다." 라는 대사를 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왕중양에게 도술을 가르쳤다는 선인에 대한 설화와 맞아떨어지는 내용이다. 묵향에서 전설의 문파가 된 건 어디까지나 전진파지 전진교가 아니다.] * [[금나라]] 초대황제 [[완안아골타|왕기얀 아구다]]가 묵향이 설치는 새 [[끔살]]당한다.[* 어차피 무협 세계관에 문파가 강대한 힘을 가진다면 그 정도의 역사가 바뀌는건 당연한 일이다. 작가도 이걸 사극으로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신승에서 절세신마가 주원장을 때려잡는 장면을 까는 사람이 없다는 걸 생각해보면 무협지 중 역사개변을 하는 작품은 많다. 물론 이게 무리 없더라도 묵향이 고증 면에서 안드로메다로 갔다는 점은 변함 없지만.] * 북송에 [[금의위]]가 있다. (금의위는 [[명나라]] [[홍무제]] 때 생겼다.) * [[정강의 변]] 이후에 [[송고종]]이 [[임안]]에서 즉위하자, [[옥화무제]]가 [[듣보잡]] 황족이 즉위하는 걸 못 막았다고 화내는데, 송고종은 흠종의 동생이고, 대부분의 황족이 금나라에 잡혀간 상황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송 고종 조구는 가장 유력한 후보자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라면 이런 사람을 제일 먼저 손에 넣었어야지....[* 갑작스러운 거란의 몰락과 여진이 급성장하는 격변이 생겼을 때에, 당시 황제였던 휘종이 장남에게 양위한 상태에서 잡혔기 때문이다. 따라서 휘종에게 '흠종'이라는 확실한 후계가 있는 상태에서 다른 아들을 황제로 생각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 '''[[칭기즈 칸]]과 [[강감찬]]이 1세기 반이 넘는 세대 차이를 넘어 20년의 차이밖에 되지 않는다.''' * 발해 이후 세워진 [[정안국]]은 강감찬의 귀주대첩 당시 이미 멸망하여 사라진 국가이다. 그러나 1부 2권에서는 고려와 같이 군사를 보내었다고 서술한다. [* 정안국의 멸망과 귀주대첩 사이에는 약 '''30년'''의 차이가 있다.] * [[동북공정]]에 의한 [[진회]]의 재평가론을 적극 수용하고 있다. 진회가 변복하고 민심을 살펴보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보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사실 동북공정과는 별개로 진회의 재평가는 있었으니 고증 문제라기보다는 소가 뒷걸음치다가 개구리 잡은 격이라 칠 수 있다. * 1부 2권에서 몽골의 족장 철진철이 부처를 찾는다. 몽골인들은 대대로 [[텡그리]]를 믿었다. 애초에 이 시기에 몽골 쪽에 불교가 전파되었을 리도 없고..[* 다만, 유목민들은 대체로 종교에 매우 개방적이었기에, 대대로 믿던 텡그리(샤머니즘) 전통 말고 다른 종교적 전통을 따르는 경우도 흔했다. 그리고, (애초에 이 작품이 역사 고증은 걍 안하고 마는 작품이라 여기서 말하는 몽골이 어느 쪽인지를 따지기도 애매하지만) 이 시기에 몽골 등 유라시아 북부에서 중앙아시아 일대의 유목지역에는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외부 종교가 충분히 전파된 상황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