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문라건 (문단 편집) == 상세 == [[고려시대]]에는 알상투[* 아무것도 안 쓰고 상투만 튼 것... 애초에 이 당시엔 망건도 없었기에 그냥 상투만 틀면 진짜 우스꽝스럽게 된다. 궁금하면 망건 없이 상투를 튼 [[전봉준]] 장군 문서의 프로필 사진을 보자.][* 다만 귀족이나 장군의 경우 집에서는 머리띠를 묶거나 상투에 관을 쓰고 지내는 경우가 있었다.] 차림을 싫어하여 반드시 두건이건 문라건이건 건(巾)을 써야 성에 찼고, 따라서 건을 쓰지 않는 사람은 고려에서 죄수밖에 없게 됨으로서 만약 고려 거리에서 알상투 차림으로 돌아다니면 영락없이 죄수처럼 보여서 비웃음을 샀고 쪽팔림을 겪었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alsn76&logNo=40200525362&proxyReferer|고려시대 의복: 시기별 변천 모습]], [[https://m.blog.naver.com/PostList.nhn?blogId=alsn76|만쭈리]], [[2013년]] [[11월 9일]]] [[신라]]의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를 봐도 귀족은 상투 위에 건을 쓰고, 하인은 그냥 알상투를 드러낸 모습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추론하면 고려 이전부터 지체 높은 사람은 상투가 대놓고 드러나지 않게 신경쓰고 다녔다고 볼 수 있다. 여말선초 시기까지도 들어온 지 비교적 얼마 안 된 발립[* 말총으로 만든 몽골식 모자] 보다는 이전까지 쓰던 전통적인 문라건을 더 흔하고 익숙하게 썼다. 실제로 고려 말기 [[안향]]과 [[이제현]]의 영정을 보면 전형적인 조선시대 이전 양식인 몸통 부분 색과 색깔이 다른 선과 띠가 있고 [[동정#s-7|동정]]이 없는 [[두루마기]]와 함께 문라건을 쓴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세히 보면 이전까지 쓰던 거의 고깔에 가까운 형태의 문라건 보다는 [[비니]]마냥 짧거나 [[사모]]마냥 위쪽으로 높이 솟은 조금 변화된 형태를 하고 있다.] 이후 문라건은 조선시대 중후기로 들어서며 [[갓]]과 [[탕건]]으로 대체된다. 고려시대 무인들은 [[갑옷]]을 입은 다음 머리에 투구는 안 쓰고 등에 걸치고 그냥 머리에 건만 쓰고 다녔다고 하는데 시대적 배경으로 보건데 문라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기록은 [[고려도경]]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한국 갑옷#s-6.1.3|이 문서]]도 참고하는 게 좋다. 이 건이 문라건일 가능성이 높은 이유는, 후술하겠지만 고려시대엔 노비나 죄수, 아니면 [[총각|쏠로]]를 제외하면 거의 다 문라건을 쓰고 다녔으니까. 사극 같은 데서 자주 보이는 머리띠는 사실상 하층민이나 총각인 병사들이 하고 다녔을 가능성이 높단 얘기... [[문벌귀족]]을 포함한 서방님(...)이 주축이 된 고려군은 사실상 거의 대부분 문라건을 쓰고 다녔다 보는 게 옳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