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문벌귀족 (문단 편집) == 권력 기반 == 문벌귀족은 [[음서]]를 통해 권력을, [[공음전]]을 통해 경제력을 세습하면서 성장하였고, 앞서 언급한 재상지종들은 왕족과 인척 관계를 맺으면서 그 특권을 공고히 했다. 특히 '[[이자겸의 난]]'으로 유명한 [[이자겸]]의 가문인 [[인천 이씨|경원 이씨(인주 이씨)]]는 고려 [[문종(고려)|문종]] 대부터 꾸준히 집안의 딸들을 왕비로 들이며 성장한 대표적인 가문이다. 당장 문종의 비 [[인예태후|3명]], 순종의 비 1명, 선종의 비 [[사숙태후]]3명, 예종의 비 [[문경태후|1명]], 인종의 비 2명이 경원 이씨 가문에서 나왔다. 11대 문종부터 17대 인종까지 8명의 왕 중에서 경원 이씨 집안 딸과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14대 헌종과 15대 숙종 2명뿐이다. 그게 아니라도 대다수의 가문들은 혼맥으로 이어져 있어서, 6촌 이내 결혼 금지령까지 나왔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다. 이자겸의 난 이후 문벌귀족들의 세력을 약화시키고자 [[묘청]] 등의 서경파를 중심으로 서경 천도 운동이 벌어졌다. 문벌귀족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기득권을 지키고자 당연히 서경으로의 천도를 반대했고, 처음에는 서경파의 손을 들어주던 [[인종(고려)|인종]]이 마지막에는 결국 서경으로의 천도 계획을 취소하였다. 이에 서경파가 반발하며 벌어진 것이 '서경 천도 운동'이다. 그러나 이 난은 결국 문벌귀족의 대장이나 다름 없었던 경주 김씨 [[김부식]]에게 진압되며, 문벌귀족의 위치는 공고화되는 듯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