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문선명 (문단 편집) === 청년기 === 1938년 경성상공실무학교[* 현 중앙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고등학교] 전기과에 입학하여 1941년 졸업하였다. 재학 때에는 서울 동작구 흑석동의 하숙집에서 하숙을 했다. 그런데 그 하숙집의 주인인 이기봉(李奇峰)은 당시 용산구 서빙고동의 서빙고[[오순절교회]]에[* 하나님의 성회,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그 오순절교회다. 한국에는 럼시, 펄선 등에 의해 오순절 성령운동이 처음 전파되었고, 일제시대에는 위축된 상태였다. 현대 한국의 오순절 교단은 해방 이후에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다.] 다니고 있었고, 문선명도 그 교회에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됐다. 또한 이기봉의 어머니인 강숙경(康淑卿)은 종로구 내자동의 자택에서 '내자동 새예수교회'를[* 참고로 새예수교회는 백남주, 이용도, 이호빈 등이 세운 이단이다. 통일교 말로는 동쪽 남성계 신령교단.]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 인연으로 문선명은 내자동 새예수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이 때 김백문[* 이스라엘수도원을 세운 한국 이단의 중시조급 인물이다. 문선명의 [[통일교]], 유재열의 [[장막성전]]과 그 후신(?)인 이만희의 [[신천지]] 등 국내에서 발생한 기독교 이단에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이 교회에 문선명과 같이 다녔다. 그러던 1939년 강숙경은 흑석동 명수대에 교회 건물을 지었고, '조선예수교회 명수대예배당'이라는 간판을 걸었다. 이 교회 신축 과정에 문선명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교회 완공 후 문선명은 주말마다 그 교회의 주일학교 교사로 활동했다. 21세 때인 1941년 4월 1일 일본 와세다대학 부설 고등공학교(高等工學校) 전기과에 입학하여 1943년 9월 30일 제 25회로 졸업하였다. 유학을 가기 위해 처음 창씨개명을 하였었다. 창씨개명한 이름은 에모토 류메이(江本龍明). 유학 중 한인 유학생들의 지하 항일 운동에 참여했다. 당시 일본 경찰의 기록에 문선명이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八)昭和十七年九月上旬頃東京都淀橋區戶塚町一ノ五二三白鷺莊に於て大原麟瑞は友人たる專修大學生高山允德、早大生'''江本某'''、早大生松本鍋禧の三名に對し支那蔣介石軍の下に朝鮮獨立運動者が參加し日本と戰爭し居る旨を强調同志として獲得せんとして朝鮮獨立に關し宣傳煽動を爲したり。[* [[일본의 항복]] 이전에 출판된 공문서는 대부분 [[가타카나]]로 쓰여 있는데, 이 문서는 특이하게 [[히라가나]]로 쓰여 있다.][br][br](8) 쇼와 17년([[1942년]]) 9월 초순에 [[도쿄도]] 요도바시구(현 [[신주쿠구]]) 도쓰카마치 1-523 시로사기소에서 [[오오하라|오하라]] 린즈이[* 한국명 강인서(姜麟瑞)]는 친구인 [[센슈대학]]생 다카야마 인토쿠, 조대([[와세다대학]])생 '''에모토 [[모#s-2.3]]'''[* [[아무개]]라는 뜻. 김모씨 할 때의 모([[某]])이다.], 조대생 마쓰모토 가키 3명에게 [[지나#s-2]]([[중국]])의 [[장제스]] 군 아래 조선 독립 운동자가 참가하여 일본과 전쟁하고 있다는 뜻을 강조, 동지로 획득하려고 조선 독립에 관하여 선전 선동을 하였다. > ------- > 《特高 月報》([[특별고등경찰|특고]] 월보) 쇼와 18년([[1943년]]) 12월 호 125쪽[[https://what-is-our-true-roadchulho0228.blogspot.com/2023/05/blog-post.html|#]][[https://nla.gov.au/nla.obj-2916707111/view?partId=nla.obj-2916899477#page/n130/mode/1up|#]] 위 문서는 문선명의 독립운동에 대한 현존하는 거의 유일한 공식 자료이다. 문선명과 당시 동창이자 친구였던 엄덕문(嚴德紋)은 에모토 모가 문선명이 맞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선명은 와세다대학이 아니라 와세다대학'''부설고등학교'''의 학생이었고, 자료엔 성만 있고 이름을 아무개라고 적었으니 참 애매하다. 물론 당시 경찰이 그의 이름도 정확히 몰랐던 수준이니 와세다대학도 잘못 적은 기록일 수도 있긴 하다. 게다가 위 문서에서 경찰에 검거된 사람의 명단에는 주동자 오하라 린즈이의 이름만 있다. 이렇듯 기록이 애매해서 문선명은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참고로 문선명의 하숙집은 도쓰카마치 1-503으로 지하 항일 운동을 한 1-523 시로사기소와는 걸어서 1~2분 거리였다. 이에 대해 더 자세한 문선명의 썰로는, 입학 초에 '한인유학생회'(밀칭: 엽전회)라는 비밀 결사단체의 신입생 환영회에 참가하였고, 그 이후부터 지하 항일 운동에 꾸준히 일조했다고 한다. 이 단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임시정부]]를 지지하고, 일왕 암살 계획을 도모하는 지하활동을 벌였다고 한다. 본인은 주로 일본 정권을 비판하는 전단지를 배포하고 다니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 때 문선명은 자주 경시국 도쓰카(戸塚)경찰서[* 일본 도쿄도 신주쿠구 도쓰카마치(東京都 新宿区 戸塚町). 와세다대학 근처에 있다.]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