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문선명 (문단 편집) == 주요 활동 ==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문선명만수대2.jpg|width=50%]][[파일:문선명만수대4.jpg|width=50%]][[파일:문선명만수대3.jpg|width=50%]]}}}|| [[https://youtu.be/X4vQVDW1mJM?t=2m10s|녹화본]] 마지막 사진은 [[윤기복]] 조평통 부위원장의 대답이다. [[만수대의사당]]에서 북한 최고위 간부들 모아놓고 하나님 믿으라고 하는거 보면, 배짱만큼은 정말 두둑한 것 같다.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image/022/2012/09/03/20120903020037_0_1_20120903044802.jpg|width=100%]]}}}|| || 김일성과의 만남 || 1990년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을 만난 바 있었고, 1991년 11월 30일 문선명이 정부의 허가 없이 북한을 방문해 여동생을 상봉한 뒤 흥남 마전 주석공관에서 [[김일성]]과 금강산 개발투자 등을 협의하려고 회담을 열었다고 한다. 이때 문선명이 북한의 국회격인 만수대의사당에서 노동당 간부를 비롯한 여러 북한 요인들을 앞에 두고서 "남쪽에 심어놓은 고정 간첩 2만 명을 전부 자수하도록 지령하라. 그러면 내가 하나님 주의로 그들의 사상을 바로잡아 민족을 위해 헌신하도록 만들겠다.", "[[한국전쟁]]은 북침이 아닌 남침이다. 전 세계 앞에 남침을 사과하라.", "[[주체사상]]을 포기하고 하나님주의를 해야 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협정에 조인하라.",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산 가족]] 상봉시켜라." 라는 발언을 그것도 탁자를 내리치며 거의 호통조로 연설했다고 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문선명을 친절히 안내해주던 [[김달현(1941)|김달현]] 부총리의 얼굴이 무섭게 굳어졌고 다른 북한 간부들이 야유를 보내는 등 분위기가 상당히 안 좋았다고. 이에 대해 같이 갔던 [[박보희]] [[세계일보]][* 통일교 계열사이다.] 사장이 김일성과 만나는 건 물건너갔다고 체념하자 문선명은 도리어 내가 이런 말 했다고 김일성이 안 만나겠다면 쩨쩨한 거지. 그래서 안 만나겠다면 만날 필요 없어."라고 대꾸했는데, 김일성은 김달현 부총리로부터 이 발언을 보고받자마자 껄껄 웃으며 "저런 배포를 가진 사람이라면 만나야지." 라면서 문선명과 단독 회동을 했고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의형제를 맺을 정도로 친해졌다. 특히 이때 오찬도 겸했는데 김일성이 내놓은 건 언감자국수. 두 사람 다 고향이 [[평안도]]였는데[* 김일성은 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 문선명은 평안북도 정주군 덕언면 출신이다.] 언감자국수가 평안도 음식이라 서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잘 먹었다고. 그러나.. 이러한 김일성과 북한의 관용적인 태도는 문선명이 1991년 당시 '''약 5조 원 가량의 현금을 북한에 건네준 것 때문으로 미국 국방부 정보국 보고서에 의해 밝혀졌다.''' [[https://www.nocutnews.co.kr/news/4806645|출처]] 즉 문선명은 북한에 돈을 주면서 이런 저러한 사업을 제안한 것. 5조 가량의 현금이면 당시 북한의 1년 GDP의 30프로 가까운 엄청난 돈이다. 그런 돈을 준다는데 약간의 기행은 웃어 넘길 수 있었던 것. 아무튼간에 1994년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 국가보안법을 무시하고 남측에서 유일하게 조문을 보낸 단체 역시 통일교였다. 당시 세계일보 회장 박보희를 베이징을 거쳐 북한으로 보내려했는데 주중 북한 대사관이 조문을 안 받는다며 난색을 표하고 이를 문선명에게 보고하자 문선명은 "뭐라고? 조문을 안 받아? 내가 보내는 사람은 달라. 끝끝내 조문을 안 받는다고 하면 [[압록강]]을 [[월북|헤엄쳐서라도 들어가]] 조문해!"라며 호통을 쳤다고 주장한다. 결국 주중 북한 대사가 [[김정일]]에게 이를 보고했고 김정일은 통일교 관계자들을 잘 모셔오라고 얘기해서 조문이 성사되었는데, 이 때문에 박보희는 나중에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 위기에 놓이면서 5년간 해외에서 유랑생활을 하다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야 겨우 입국할 수 있었다고. 아무튼 이래저래 북한과의 사이는 꽤 좋은 편이다. 젊었을 땐 철저히 [[반공]], 승공을 주장했고 일본에서도 반공활동을 하면서 교세를 폈지만 말년에는 또 북한과 친하게 지낸 기묘한 이력인 것이다. 한편 [[시사IN]]에서는 [[1994년]] 북핵위기 때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 낸 것이나, [[2000년]] [[김대중]] [[대한민국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던 것이나 [[노무현]]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이 [[2007 남북정상회담]]을 열었을 때도 통일교가 훨씬 전부터 갖고있던 대북 [[핫라인]]의 도움을 받았다는 기사를 내었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308/0000008096?sid=103|링크]] 2011년 김정일 사망 당시 북한에 조화를 보냈고, 2015년 8월 30일 김정은이 문선명의 3주기를 앞두고 유족들에게 애도의 메시지를 보냈다. 참고로 김정은은 문선명의 사망 당시에도 조전을 보낸 바 있다. 2019년 지금까지도 북한 고위 관료나 통일교 고위 관료가 죽으면 서로서로 죽은 당일 바로 조문을 주고 받는다. 참고로 조문에서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아시아태평양평화통일위원회'라고 칭하며, 통일교는 '세계평화'''련'''합'이라고 칭한다.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image/022/2012/09/03/20120903020033_0_0_20120903044701.jpg|width=100%]]}}}|| 2002년 6월 4일 [[펠레]]와 찍은 사진. 웃기게도 1994년 [[김일성]]이 곧 죽을 거라고 예언했다며 [[월간조선]]이 대문짝만하게 보도한 무속인 심XX이 1995년 문선명이 오래 안 가 곧 죽을 것이라고 책에서 주장했는데 17년이나 걸렸다. 2003년 이라크 전쟁 후 '종교 화합'을 목적으로 '이스라엘 평화대행진'을 열었다.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image/022/2012/09/03/20120903020080_0.jpg|width=100%]]}}}|| 2005년 2월 14일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천주청평수련원(현 HJ천주천보수련원)에서 열린 '평화의 왕' 추대식. 이날 참아버님과 참어머님으로 진정한 만왕의 왕으로 즉위했다.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image/022/2012/09/03/20120903020084_0.jpg|width=100%]]}}}|| 2005년 7월 15일 '2005 피스컵코리아' 개막전에서 [[박근혜]]와. 이 사진이 후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진 이후 [[세계일보]]의 [[최순실]] 단독 인터뷰건과 엮여 [[박근혜/비판/사이비 종교 논란|통일교의 유착 의혹]]이 제기되었다.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문선인삼.jpg|width=100%]]}}}|| 문선명의 90살 생일 때는 김정일이 생일선물로 90년근 산삼 등 선물을 보내주었다. [[http://www.cbs.co.kr/Nocut/Show.asp?IDX=1052236g|관련기사]].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문선김대.jpg|width=100%]]}}}|| [[김대중]] 대통령이 통일교 행사에 축하 영상을 보냈다.[* 아마도 햇볕정책 추진을 위한 대북접촉 과정에서 통일교의 도움을 받은 것이 인연이 된 걸로 보인다.]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문선전두.jpg|width=100%]]}}}|| [[전두환]] 전 대통령이 문선명 장례식장에 축하화환을 보냈다. 사진 오른쪽. 통일교에서 죽음은 천국에 가는 축하해야 될 일이기 때문에 통일교인이 죽으면 장례식장에 반드시 축하화환을 걸어야 한다. '제12대 대통령 전두환'이라고 써 있다. 2012년 당시 국회의장이던 [[강창희]]도 껴있는 걸 볼 수있다.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문선이명.jpg|width=100%]]}}}|| 문선명 사망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장례식장에 축하화환이 아닌 근조화환을 보냈다. 옆의 알록달록한 축하화환과 대비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