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문어체 (문단 편집) == 전근대 [[일본]]의 서면어 형식 == >'''ナムウヰキ、[ruby(共, ruby=トモ)]ニ[ruby(育, ruby=ソダ)]テシ[ruby(知識, ruby=チシキ)]ノ[ruby(木, ruby=キ)]。''' >'''ナムウヰキ、[ruby(共, ruby=とも)]に[ruby(育, ruby=そだ)]てし[ruby(知識, ruby=ちしき)]の[ruby(木, ruby=き)]。''' >'''나무위키, 여러분이 가꾸어 나가는 지식의 나무.''' 일본이 고유의 서사형식 [[가나(문자)|가나]] 문자를 확립하고 어느 정도 고유한 문자문화가 정착하자 《[[겐지모노가타리]]》를 필두로 교범 역할을 하는 작품들이 등장했다. 이러한 [[헤이안 시대]] 작품들을 토대로 서면어격식을 표준화하려는 노력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는데, 그렇게 고정된 서면어 형식을 오늘날 일본에서는 문어체, 또는 고문이라 부른다. 본격적으로 이러한 노력을 시작한 사람은 12-13세기 후지와라노 사다이에(藤原定家)이고, 그가 제정한 가나 형식을 테이카 가나 표기법(定家仮名遣い)이라 부른다. 그러나 사다이에 시대에는 음운의 변화로 헤이안 시대에 생긴 가나가 혼란에 빠졌기 때문에, 그가 의도한 헤이안 시대 표기와는 괴리가 있었다. 17세기 에도시대 승려 케이추(契沖)는 사다이에의 가나 형식을 수정하여 케이추 가나 표기법(契沖仮名遣い)을 만들었다. 이것이 오늘날 말하는 [[역사적 가나 표기법]]의 기본이 되었다. 고문은 어법으로나 표기로나 사다이에나 케이추가 살던 시대가 아닌, 헤이안 시대를 모방했기 때문에 (마치 현대 중국어와 고전 한문이 상당히 차이나듯) 현대 일본어와는 꽤나 다르다.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어조사나 기능어까지 [[한자]]를 사용해서 표기하는 일이 많아, 현대 일본인도 별도로 교육을 받지 않으면 바로 이해할 수가 없다. 메이지 유신 무렵부터 패전 전까지 일본인이 문어 생활에 사용한 문체는 한문에 토를 붙여 [[훈독(한문)|훈독]]하던 말투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만요슈]] 등에 등장하는 화문체(和文體)와 섞인 형태를 띠고 있었다. 이렇게 성립된 어투를 '''보통문(普通文, 후츠분)'''이라고 한다. 보통문은 같은 공문서투였으나 일본어의 어순을 따른 변체한문에 가까웠던 소로분(候文)[* 말끝이 겸양어인 候(そうろう)로 끝난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과는 형태 면에서도, 용도 면에서도 달랐다. [[메이지 유신]] 이후로는 문학가들을 중심으로 입말 그대로 쓰자는 언문일치운동이 일어나 점차 문어체가 [[구어체]] 기반의 글말로 변해갔지만, 여전히 공문서와 일부 지식인들은 상당히 폭넓게 문어체(보통문)를 사용했다. [[일제강점기]]의 각종 공문서 및 전보도 문어체로 작성되었으며, 1945년 [[히로히토]]의 [[옥음방송]]도 대본을 문어체로 작성했다. 1946년에 현대 가나 쓰기(現代仮名遣い)를 공포하고 마지막까지 문어체였던 공문서인 법령이 현대 구어체 일본어로 바뀌면서[* 법을 고칠 일이 있을 때 고치면서 겸사겸사 현대 일본어로 바꾸는 식이라 모든 법이 한꺼번에 현대 일본어로 바뀐 것은 아니다. 최종적으로 이 작업이 완료된 때는 2004년이다.] 현실의 일상적 어문생활에서는 더 이상 보기 어려운 서면어 형식이 되었다. 외국인을 위한 일본어 교육에서도 별도로 가르치지 않는다. 오늘날에는 종교 관련 종사자[* 주로 전통 종교(불교, 신토)에서 자주 접할 수 있고, 기독교에서도 성공회와 루터회를 제외한 대다수 개신교단(찬송가와 주기도문 한정)과 정교회는 문어체를 아직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들이 자주 쓰는 문체란 인식이 있으며, 나이가 있거나 보수적인 문인들의 작품에서도 이 문체를 간혹 찾아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