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문재인/2015년 (문단 편집) == 당 대표 당선과 이후 (2015. 2. ~ 2015. 5.) == >'''변화와 단결로 ‘이기는 정당’을 만들겠습니다.''' >- 당대표 경선에서 {{{#!wiki style="text-align: justify; text-justify: distribute; word-break: normal;" * 2015년 2월 [[문희상]] 비대위원장 체제에서 치러진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에서 45.30%의 득표율을 얻어 새로운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 당대표로 선출된 이후, [[이승만]], [[박정희]] 두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하고[* 두 전직 대통령 모두 '사사오입 개헌', '3.15 부정선거', '5.16 군사쿠데타', '10월 유신' 등등 종신 집권을 위해 민주주의 질서를 여러 차례 파괴하고 민주화운동가들을 탄압한 과거가 있는지라 민주화 세력을 대표하던 이들이 많은 야권에서는 두 전직 대통령의 묘소는 참배하지 않았었다.] [[https://file.mk.co.kr/meet/neds/2015/08/image_readtop_2015_826577_14406641642094983.jpg|안보]] [[http://pds.joins.com/news/component/newsis/201209/28/NISI20120928_0007101054_web.jpg|행보]]를 연이어 선보이고, 당직에서의 탕평책[* 사무총장과 정책위의장 등등 당 핵심 요직들을 비주류 인사들로 임명했다. 그러나 2015년 12월을 기준으로 문 대표 사퇴를 압박하고 있는 비주류 인사들이 당을 박차고 나가버리거나 당무를 거부하면서 주류 진영 인사들로 인사 교체가 이루어졌다.]을 추진하는 등 혼란에 빠졌던 당을 잠시 수습하는 듯하였으나, 4.29 재보선 패배 이후 당이 다시 내홍에 빠져들어 정치적 시험대에 올랐다.[* 2015년 초까지만 해도 압도적 1위였던 차기 대권 지지율에서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에게 1위를 내주고 같은 당의 박원순 서울시장과도 박빙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2015년 12월을 기준으로 김무성 대표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하는 등 부활의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고, 20대 총선이 끝난 다음부터는 반기문 UN 사무총장과 더불어 투톱 체제를 굳혔다.][* 2012년 대선에서 맞붙었던 박근혜는 자신이 지휘봉을 잡은 선거에서 진 적이 없다. 그래서 별명이 '선거의 여왕'인 반면, 문재인 대표는 대선 이후 20대 총선 전까지 자신이 치른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적이 없었다. 특히나 4.29 재보궐선거는 '성완종 리스트' 파문 아래서 치러졌던데다가 모두 야권 강세 지역에서 치러졌었기 때문에 문재인 당시 대표에겐 치명적인 상처였다. 그러나 인재 영입의 성공과 20대 총선의 승리로 명실상부한 더민주 최강의 차기 대권 주자로 부활하게 된다.] * [[주한미국대사 피습 사건]]때 [[리퍼트]] 대사를 위로 방문하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23&oid=305&aid=0000016344|더불어민주당 브리핑]] [[주한미군]]은 통일 후에도 계속 있어야한다고 했었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3/13/0200000000AKR20150313090951001.HTML?input=1195m|연합뉴스]], '''혈맹은 혈맹'''이라면서 '''한미는 70년 친구 사이'''라고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eoaVEImWJY|문재인 전 대표 유투브 1:57부터 시작]] * 본인의 SNS를 통해 영화 [[암살(2015)|암살]]에서 나타난 시대상을 거론하며, 광복 70주년을 맞고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도 우리나라가 완승한 현재, 약산 [[김원봉]]을 비롯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의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 '5.24 조치[* 이명박 정권에서 실시된 대북 관계 단절 조치]'를 해제하자는 주장과 [[서부전선 포격 사건]]이 터지고 나서 북한에 고위급 회담을 제안할 것을 주장하여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북한의 도발에 단호한 조치는 필요하지만 대화 역시 병행해야 한다는 말이었는데 언론에서 의도적으로 대화하자는 부분만 잘라서 확대 보도한 측면이 있다. 타이밍이 부적절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지만.] 결국 그 이상의 무력충돌이 없이 협상이 진행되자 해당 부분을 비판했던 여론이 쏙 들어가기도 했다. 자세한 부분은 [[서부전선 포격 사건]] 참조. * 당대표로서 [[새정치민주연합]] 셀프 디스 캠페인에 제일 먼저 참여했다. 카리스마를 보이지 못해 죄송하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는데, '결국 내가 착해서 그래요'라는 뜻 아니냐며 셀프디스가 아니라 자기 자랑이라며 비판하는 사람과 실제로 늘 지적 받던 부분이 '너무 부드럽다', '천성적으로 야성적인 면모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자신이 저런 부분이 부족하다는 것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으며 앞으로 이를 고쳐나가겠다는 뜻을 밝혔으니 기대가 된다는 반응이 양분하고 있다. 그리고 애초에 셀프디스 캠페인 자체가 홍보위원회에서 나온 홍보의 일환이었으니, 성공한 셈. 2015년 12월 기준으로 비주류 측의 사퇴 요구를 거부하고 그동안 유화책으로 대처해왔던 방침을 강경책으로 수정한 것을 보면 셀프디스에서 보여준 다짐을 이제 실천으로 옮기고 있다는 평가가 존재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