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문제(수) (문단 편집) == 기타 == * 수문제는 개인적으로 매우 독실한 [[불자#s-1|불자]]였기에 그의 치세에 [[불교]]가 매우 흥성했다. * 양견은 황제가 되고 나서 자기 아버지만을 [[황제]]로 추존하고, 그 윗세대 즉 자기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는 황제로 추존하지 않았다. [[수나라]] 이전의 [[중국]] [[왕조]]들이 보통 [[창업군주]]가 황제로 즉위하면 자기 4대조까지 추존하는 경우가 많았고, 수나라 이후의 중국 왕조들도 자기 4대조는 물론이고 그 이상의 까마득한 조상을 황제로 추존하는 경우도 있었음을 생각하면 자기 아버지만 황제로 추존한 수문제 양견의 행동은 굉장히 의아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수나라 다음으로 중국대륙을 지배한 [[당나라]]는 [[창업군주]]였던 [[당고조]]의 5대조로도 부족하여 [[춘추전국시대]], 심지어 [[순임금]] 때의 인물까지 황제로 추존했다. * 사실 수문제는 [[공처가]]이기도 했는데, 부인 덕에 황제가 된 것은 물론이요, 부인 또한 행실이 올바르고 근검절약했기에 부인에 대한 어떤 트집도 잡을 수가 없었으며, 이들은 서로 상대방을 공경하는 부부 관계를 이어갔다. 황후는 그야말로 여걸이었는데, 결혼할 때 "자기 이외에 어떤 여자도 사랑해서는 안 된다."라고 당당하게 요구했으며, "자신 이외의 여인에게서 자식을 보지 않는다."라는 약속을 받아낼 정도였기에 남편의 여자 문제를 철저하게 통제했다.[* 사실 이것은 황제가 여색에 빠져 정사에 관심을 소홀히하고 방종해지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도 했다. 수나라가 세워지기 바로 몇 년전이 혼란함의 극치였던 위진남북조시대였고, 위진남북조시대에 황제들은 여색에 빠져 정사를 안돌보거나 치정 문제 때문에 살인과 폭력이 난무하여 정치가 혼란했었기 때문에 더욱 더 예민하게 여자 문제를 관리할 필요가 있기도 했다.] 또한 첩을 총애하는 대신들에게 벌을 내리거나 파직시킬 것을 권하기도 했다고 한다. 황제가 절세의 미인을 인수궁에서 우연히 보고 한 눈에 반해 총애했는데, 문헌황후가 남편이 조정으로 들어간 틈을 타서 몰래 그녀를 죽였고, 그녀의 잘린 머리를 상자에 넣어서 보여주었다는 얘기도 있다. 이에 수문제가 분노했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화가 난 나머지 혼자 말을 타고 산 속으로 미친 듯이 내달렸는데 재상 고경과 [[양소]] 등을 비롯한 신하들이 급히 뒤를 쫓아가 진정시켰다. 이때 문제가 깊이 한숨을 쉬며 “짐은 지존의 천자인데도 자유가 없구려!”라며 한탄했다는데 고경이 일개 부인의 일로 천하의 정치를 버려둘 수 있겠냐며 설득하여 하는 수 없이 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사실 이 일화가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도 있으므로 일종의 야사로 보아야 할 듯하다. 이때 문헌황후가 자신을 일개 부인으로 표현한 고경을 처형했다는 일화도 있다. 물론 이것 때문만이 아니라 대표적으로 여러 명의 아내를 둔 점 등등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랬다는 얘기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