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문화대혁명 (문단 편집) == 이야기 == * [[덩샤오핑]]의 아들이 문화대혁명 당시 덩샤오핑 눈앞에서 창문 밖으로 내던져져서 이에 앙심을 품은 덩샤오핑이 이후에 야심찬 개혁, 개방 정책을 추진하게 되었다는 [[카더라 통신]]이 있긴 한데 그의 정책은 그렇게 단순한 동기에서 시작된 게 아니었다. 단, 홍위병들이 덩샤오핑의 장남 덩푸팡을 2층 베란다에서 집어 던지는 바람에 하반신 마비로 장애인이 된 것은 사실이다.[* 덩푸팡은 덩샤오핑이 권력을 잡자 중국장애인연합회를 창설해서 스스로 주석에 취임한 뒤에 아버지의 이름을 내세워서 온갖 종류의 이권에 개입하면서 엄청난 재산을 모았다. 덩샤오핑의 아들이다 보니 언론, 사법기관, 당 그 누구도 덩푸팡의 부정부패를 건들지 못하였다. 결국 덩샤오핑 사후에도 계속 자리를 지키다가 2008년 명예 주석으로 물러났다. 실제 [[중국 공산당]]의 개국공신이라 할 수 있는 1세대 원로들의 후손들인 [[태자당]]은 가문의 영향력을 이용해서 어마어마한 재산을 축적하였다. 사실상 이들은 법위에 존재하는 신중국의 붉은 귀족들이다.] * 영화 《[[마지막 황제]]》의 후반부에서 문화대혁명 장면을 볼 수 있다. [[만주국]] [[황제]]에 올라 전범이 된 [[선통제|아이신기오로 푸이]]는 [[교도소]]에서 징역형을 살고 '교화'된 후 사회로 나와 정원사가 되었는데, 거리를 지나가다 만나게 된 반동분자가 바로 그때의 교도소장(실제 인물인 김원은 [[조선족]]이었다고 한다)이었던 것. 선통제는 그래도 교도소에서 여러모로 마음 써준 그가 비참한 꼴이 된 것을 불쌍하게 여겼는지 '나쁜 사람이 아니다.'라고 옹호하면서 선처를 호소했지만 결국 외면당한다. 참고로 이 부분은 사실을 각색한 것이다. 푸이가 해당 교도소장인 김원을 변호해 준 것은 사실이나 문화대혁명이 일어날 당시 푸이는 병중에 있었고, 길거리에서 홍위병에게 내쳐진 일도 없었다. 다만, 일부 극단적 홍위병들이 푸이를 두고 "청나라 봉건 황조에서 인민을 약탈하던 황제"라고 까대는 일은 적잖게 있었다. 그래서 병이 났는데도 병원에서 홍위병의 공격을 염려해 입원을 거부했고, [[저우언라이]] 총리가 직접 신원을 보증해주고 나서야 입원할 수 있었다. * 여담으로, [[국공내전]] 때 [[중화민국]]([[대만]])이 [[타이완 섬]]으로 [[국부천대|후퇴할 때,]] [[미국]]에게 [[수송선]] 몇 척을 빌려 북경의 유물 대다수를 가져갔다.[* 몽땅 가져갔다는 표현이 많은데,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유물을 선발해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 것만 옮겨졌다. 그 엄선된 게 69만 점에 달한다는 게 함정이었다.] 그래서 대만 [[타이베이]]의 [[국립고궁박물원]]에서는 3개월마다 유물을 순환해서 전시해야하며 해당 박물관이 보유하는 유물을 전부 보려면 6~8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만약 이게 중국에 그대로 있었으면, 그 유물들은 모두 파괴되어 없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는 베이징의 고궁 박물관 유물 양이 대만 고궁 박물원 유물보다 많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둘이 비슷하다. 정확히는 고대 유물들이 새로 발굴되어 고대부분은 중공이 더 낫고, 명청시기 유물들은 대만이 더 낫다. 아무튼 문화대혁명 때 무진장 까부쉈으면서도 이 정도라니 역시 [[대륙의 기상]]이다.] * 게다가 이 당시 문화대혁명으로 엄청난 중국 문화가 파괴된 반면, [[대만]]에서는 '[[중화문명부흥운동]]'이라 하여 중국 문화를 연구,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 덕에 그 성과 등에 힘입어 스스로를 중국 문명의 종주국이라 자부할 수 있게 되었다. 중국의 국력이 넘사벽으로 커진 현재에도 대만의 이러한 노력과 자부심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 애꿎게도 [[개]]에 불과했던 [[차우차우]]도 이때 많이 학살당했다. 또한 다른 개들도 상당수 학살당했는데, 덩치만 크고 먹을 것만 탐낸다고 하여 쓸모없는 개들이라고 하여 덩달아 학살당했다. 우습게도 고양이가 쥐를 잡고 먹을 것도 적게 먹어서 개(다만 군견 같은 개들을 제외)보다 훨씬 쓸모 있다 하여 고양이들이 우대받았다. 물론 중국 황실에서 [[페키니즈]] 등의 애견을 호화롭게 기르는 일이 있곤 했던 역사의 영향도 있었을지 모른다. * [[덩샤오핑]]이 [[천안문 6.4 항쟁]]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던 이유도 문화대혁명의 트라우마에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 이외 4인방의 영어 표기인 [[갱 오브 포]]에서 이름을 따온 영국 펑크 밴드가 1970년대에 결성되기도 했다는 설이 있다. * 삐삐 밴드 1집인 《문화혁명》이 문화대혁명에서 따왔을 거라 추측된다 [[카더라]]. * 21세기에 와서는 [[중국홍객연맹]]이 추앙하고 미화하는 역사이기도 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는 반정부 행위에 속한다. 물론 중국 정부는 이들의 능력이 아까운지 적당히 눈감아주는 분위기이다. * 다른 이야기로 [[베이징]]에 이 시기를 주제로 한 테마[[식당]]이 있다. [[홍색경전주제찬청]] 문서로.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