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문화대혁명 (문단 편집) === 《해서파관(海瑞罷官)》과 조반유리(造反有理) === 그런 가운데 전혀 예상치 못하게 '''[[해서파관 사건|《해서파관》이라는 한편의 연극이 거대한 화약고에 불을 당기고 만다.]]''' 1959년 당시 [[베이징]] 부시장이었던 우한(吳晗)은 역사학자로서의 지식으로[* 명대(明代) 역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로서 청화대학의 역사학 교수를 지내기도 했으며 이 시절 명 황제 [[만력제]]의 능 발굴을 주도하기도 했다.] 연극 《해서파관》을 발표하는데, 이 연극은 명나라를 배경으로 [[해서(명나라)|해서]]라는 청백리 관리가 폭군 [[황제]]인 [[가정제]]에게 파직을 당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럭저럭 잘 만든 연극이고, 연극을 발표하기 전부터 마오쩌둥은 [[해서]]를 높이 평가하며, "'''당원들은 해서를 본받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으며, 처음 연극이 발표되었을 때, 마오는 "'''이거 괜찮네.'''"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애초에 이 연극을 제작하도록 의뢰한 사람이 바로 마오쩌둥 본인이었다.[* 대약진 운동 실패의 원인 중에 현장에 나가 있던 이들이 허위보고를 일삼았음을 알고 가정제에게 초과격 팩트폭력을 한 충신 해서 좀 본받아라! 라고 한 것이 원인이 되었다.]--펑더화이:???-- 그러나 마오의 부인인 [[장칭]]과 [[야오원위안]]이 [[1965년]], '문회보'라는 신문에 "'''이거 마오쩌둥 동지 돌려까는 내용 아닌가??'''"이라는 칼럼을 발표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장칭에 의하면, 해서는 펑더화이를 의미하며, [[황제]]는 마오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1959년, 루산 회의에서 실각한 펑더화이를 빗대서 쓴 [[연극]]이라고 주장했다.[* 현대의 연구에서 《해서파관》은 딱히 마오쩌둥을 직접 비판한다기보다는, 일반적인 수준의 정치 비판 성향을 가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해서파관 사건]]이다. 이것이 자신을 겨냥한다는 것을 직감한 베이징 시장 펑전은 이것을 (현실사회와는 무관한)학자들 사이의 학술토론으로 만들어서 어떻게든 파장을 축소하려 했지만 이미 마오쩌둥의 지시를 받은 저우언라이, 장칭, 야오원위안 등이 수많은 선전매체를 동원해서 맹공격을 퍼부었고, 아예 마오까지 직접 이 [[키배]]에 뛰어들어서, 1966년 5월 16일,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통지를 통해 펑전을 비판했다. 여기에 린뱌오가 "'''우리 마오님은 천재! 마오님 말씀이 무조건 다 옳아요!'''" 식의 일장연설을 했고, 7월 27일, [[홍위병]] 대표단들이 "'''[[사회]]와 [[정치]]를 뒤집어 엎자!'''"라는 편지를 마오에게 보냈다. 이를 "'''조반유리(造反有理)'''"라 한다. 조반유리는 말 그대로, '''"[[반란]]이 일어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은 [[홍위병]]의 반란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결국 펑전은 덩퉈, 랴오모사 등과 함께 숙청당했다. 자세한 것은 [[해서파관 사건]] 문서로.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geibundo.sakura.ne.jp/Mao_Zedong_Cultural_Revolution.jpg|width=100%]]}}} || || "천하무적의 병사들의 분노가 하늘에 가득하다[* 天兵怒气冲霄汉은 마오쩌둥의 시구(詩句)에서 인용된 것이다.] — 조반유리" || 마오는 젊은이들이 잘한다며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히고, 8월 8일, 인민일보에 《사령부를 폭격하라-나의 대자보》라는 제목의 짧은 논평을 발표했다. 공산당 안의 우파를 척결하자라는 내용이었지만, 사실상 류사오치와 덩샤오핑에게 [[선전포고]]를 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때부터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었다.''' 참고로 사건의 발단이 된 우한은, 문화대혁명 때 감옥에 갇혔다가 1969년, 옥사했다. 그는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4인방이 실각한 뒤 복권되었다. 펑전 역시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에게 탄압을 당했으나 목숨은 건지고 1979년 덩샤오핑 집권 이후 복귀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