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문화대혁명/악영향 (문단 편집) === 군 === * [[녜룽전]]: 1967년 [[2월 역류]]에서 패한 이후 자아비판을 해야 했다. * [[예젠잉]] : 녜룽전처럼 자아비판을 해야 했다. * [[예페이]] : 고향이 [[필리핀]]이라는 이유로 박해를 당했다. * [[샤오징광]] : [[상하이 1월 폭풍 사건]] 이후 홍위병들에게 납치되어 조리돌림을 당하다가 전군문혁소조장 쉬샹첸의 개입으로 풀려났다. * 샤오화 : [[중국 인민해방군]] 총정치부 주임 재직 시절 [[장칭]]의 명령으로 한밤중에 가택 수색을 당하고 예젠잉의 집으로 피해야 했다. * [[쉬샹첸]] : 녜룽전처럼 자아비판을 해야 했다. * [[쉬스유]] : [[난징]] 군구 총사령관 재직 시절 홍위병들에게 납치되어 베이징으로 압송되어 조리돌림당하다 [[마오쩌둥]]의 개입으로 풀려났다. * [[장즈중]] : 홍위병들이 가죽채찍을 들고 장즈중의 집을 여러차례 습격해 재산을 약탈했다. 그러나 저우언라이가 그를 보호할 것을 마오쩌둥에게 제의했고, 마오쩌둥은 이를 수락해서 더 이상의 박해를 받지 않았다. * [[주더]]: 주모군이라 불리며 군의 최고 원로로 존경받던 주더조차도 참소와 공격을 받았다. 그나마 마오쩌둥이 주더를 신뢰하고 있어서 실각이나 숙청을 당하지 않았다. * [[천이(1901)|천이]] : 원수들 중에서 문화대혁명파에 강경했던 인물로, [[2월 역류]] 이후 가장 크게 비판받아야 했으며, 그의 가족들도 끌려나와 조리돌림을 당했다. * 추후이쭤 : 총후근부 부장이며 [[린뱌오]]의 최측근인 그조차도 1967년 1월 홍위병들에게 납치되어 머리가 박박 깎이고 늑골이 부러질 때까지 고문당했다. * [[펑더화이]] : 군부의 피해자 중 끝판왕이었다. [[1959년 루산회의]]에서 [[마오쩌둥]]의 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실각한 상황이었는데, 1966년 [[장칭]]의 명령에 따라 [[홍위병]]들이 몰려와 [[쓰촨성]]의 자택에 있는 그를 납치해서 베이징으로 끌고 왔고 100번이 넘는 고문을 가한 후 비투회에 끌고 다녔다. 결국 직장암이 악화되어 감옥 의무실에서 사망했다. 또한 이걸 신호탄으로 위의 군의 피해에 서술했듯이 [[중국 인민해방군]] 베테랑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 [[푸쭤이]] : 자신은 보호되었으나 가족들은 홍위병들에게 조리돌림을 당했다. * [[허룽(군인)|허룽]] : 반당 분자로 낙인찍히고 투옥되었다가 옥사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