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뭄바이 (문단 편집) === 현대 === [[파일:뭄바이 테러 인도.jpg|width=1000]] 2008년, [[뭄바이 연쇄 테러|뭄바이 연쇄 테러 사건]] 당시의 영화 [[호텔 뭄바이]] 배경이 된 타지 호텔. 독립 후에 뭄바이는 봄베이국을 거쳐 마하라슈르타 국의 중심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1958년, 중부 지역과의 분리를 주장하는 삼유크타 마하라슈르타 운동의 시위 도중 경찰이 발포하여 105명이 사망하는 참사도 있었다. 1972년에는 인도 최대의 과학 단지인 네루 센터가 세워졌다. 뭄바이 성장으로 1979년에는 인구를 분산시키기 위한 자매도시 [[나비뭄바이]]가 성립되었다. 1982년 1월에는 직물공장의 25만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였고, 1984년 5월에는 뭄바이-타네-비완디에서 폭동이 벌어져 278명이 사망하고 1118명이 부상당하였다. 1992년 12월 ~ 1993년 1월에는 아요디야의 바브리 모스크 철거에서 유발된 무슬림과 힌두교도 간의 유혈 충돌로 1천이 넘는 사망자가 나오고 도시가 마비되었다. 1993년 3월에는 [[인도 마피아]] 두목 다우드 이브라힘이 주도한 13번의 차량 테러로 257명이 사망하고 7백 명이 부상당하였다. 한편 독립 이후에도 봄베이로 불리던 도시는 1996년 시정부의 의결로 현지 유래 지명인 뭄바이로 개칭하였다.[* 빅토리아 테르미누스 역시 [[마라타 연맹]]의 군주 시바지의 이름을 따서 차하트라파티 시바지 테르미누스로 개명되었다.] 21세기에도 혼란은 이어졌다. 바브리 모스크 철거 10주년인 2002년 12월에도 차량 테러로 2명이 죽고 28명이 부상하였다. 2003년 1월에는 자전거 테러로 1명이 죽고 25명이 부상하였고, 3월에는 기차 테러로 10명이 죽고 70명이 부상하였다. 7월에도 버스 테러로 4명이 죽고 32명이 부상당했으며, 8월에도 두 차례의 폭발로 44명이 죽고 150명이 부상하였다. 테러 외에도 2005년 7월에는 하루만에 94㎝의 비가 쏟아지는 폭우로 도시가 마비되었고, 83명이 사망하였다. 2006년 7월에는 7차례의 폭탄 테러로 209명이 죽고 7백 명이 다쳤다. 2008년 11월에는 영화 [[호텔 뭄바이]]의 배경이 되는 [[뭄바이 연쇄 테러]]로 195명이 죽고 350명이 부상하였다. 2011년 7월에도 폭탄이 터져 26명이 죽고 130명이 다쳤다. 한편 같은해 뭄바이 완케데 스타디움에서 열린 크리켓 월드컵에서 인도 대표팀은 1983년 이후 두번째로 우승을 차지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