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뮌헨 (문단 편집) == [[나치즘]]과의 관계 == [[나치즘]]의 본고장으로 현재도 [[극우]] 정당 지지세가 있는 곳이다.[* [[나치]]를 경험했던 독일에선 극우 정당 자체가 공기에 가까웠다. 독일에서 가장 보수적인 바이에른(뮌헨은 바이에른의 주도)의 2008년 선거에서 극우파인 독일민족민주당의 지지율은 1.2%에 불과해 9.4%를 득표한 [[동맹 90/녹색당]]의 8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2017년 선거에서 [[독일을 위한 대안]]이 바이에른에서 12%를 득표하기는 했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것은 아니었다.] 특히 [[뉘른베르크]]와 뮌헨은 [[히틀러]]와 나치 세력의 발원지이기도 했다.[* 그래도 나치가 생겨났을 뿐이지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동프로이센]], [[포메른]] 등보다 나치 지지율은 훨씬 낮았다. 가톨릭 교세가 강한 이 지역에서 가장 세가 강했던 정당은 [[가톨릭 중앙당]]의 자매당인 바이에른 인민당이었다. 애초에 뉘른베르크가 뜬 이유 자체가, 소도시였던 뉘른베르크의 [[지방선거]]에서 [[군소정당]]이던 나치가 온 당세를 집중하여 압승함으로써 나치의 존재감을 높이기 위한 술책이었다. 다만 히틀러의 정치적 배경은 뮌헨이 맞다. [[뮌헨 폭동]] 참조.] 나치당의 [[뮌헨 폭동]]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1938년에는 악명 높은 [[뮌헨 협정]]이 이루어진 곳이기도 하다. 특히 뮌헨에는 [[홀로코스트]]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다하우 수용소도 근방에 있으며, 옛 나치당사도 있다. 현재는 대부분 당시 형태로 보존되어 옛 역사를 반성하는 의미의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또 뮌헨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국방군|나치 독일군]]의 [[전쟁범죄자]]인 [[하인리히 힘러]]와 히틀러의 아내인 [[에바 브라운]], 여비서였던 [[트라우들 융에]] 등 나치 관련자들의 고향이기도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