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래희망연대 (문단 편집) ===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친박연대 비례대표 후보자들.jpg|width=100%]]}}}|| || {{{#fff [[면목역|{{{#fff 면목역}}}]]에서 총선 승리를 다짐하는 친박연대 비례대표 후보자들}}} || [[대구광역시]], [[경상북도]] 지역과 [[부산광역시]] [[연제구]]를 비롯한 6개 지역에서 당선되었으며, 심지어 수도권에서도 '''[[안산시 상록구 을]] 한 곳'''[* 당시 여야 모두 공천파동으로 표가 거하게 갈려 당선되었다.]을 얻었다. 비례 8석을 포함해 총 14석.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친박 무소속 연대 성윤환.jpg|width=100%]]}}} || || {{{#fff 친박연대 [[홍사덕]] 후보와 친박 무소속 연대 [[성윤환]] 후보의 합동 기자회견}}} || 이 외에도 [[친박 무소속 연대]] 후보들과 함께 공동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친박 무소속 연대 역시 16명 출마, 12명 당선의 상당한 성과를 냈다. 합치면 지역구 18명, 전국구 8명으로 [[교섭단체]]까지 가능한 숫자.[* 물론 조속한 복당이 목적이었기에 교섭단체가 구성되진 않았다.] 지역구 당선자수(6명)보다 비례대표 당선자수(8명)가 더 많았다.[* 정당득표율이 무려 13%, 확보 의석이 8석으로 '''제3당'''이었다. (이회창과 충청 민심을 마케팅 전략으로 충청권 지역구 24석 중 14석, 6.8% 정당득표와 비례대표 4석을 확보한) 전체 제3당 자유선진당의 두 배.] 박근혜라는 이름값만으로 이 정도의 성과를 거둔 것이다. 하지만 현역 의원이던 수도권의 [[이규택]], 부산의 [[엄호성]] 의원은 낙선하였다.[* [[19대 총선]]의 경우 [[국민생각]], [[정통민주당]] 등 주요 양당 공천에 떨어진 인사들이 설립한 정당들은 의석수 배출은커녕 비례대표 득표율 2%도 달성하지 못하여 정당등록이 취소되었다. 그나마 선전한 것으로 평가받는 [[통합진보당]]의 의석수가 13석인데, [[민주통합당]]과의 야권연대로 가능했던 것이다. 또한 지역 기반이 있는 [[자유선진당]]도 겨우 5석을 확보하는데 그쳤다. 수도권 낙선은 당연한 것이다.] 한편 이 시기에는 역대급 흑역사가 일어났는데, 경주에서 당선된 [[김일윤]] 의원은 불법적으로 돈을 뿌린 것이 걸려서 4월 21일에 제명되었다. 또한 선거법을 위반한 수도권 당선자인 [[홍장표(정치인)|홍장표]] 의원 역시 의원직을 잃었다. 압권은 '''[[매관매직|비례대표 순번을 공천헌금을 받고 팔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돈을 준 [[양정례]] 의원(비례 1번/ 17억), [[김노식]] 의원(비례 3번/15억 1000만원)과 공천헌금을 받은 [[서청원]] 대표(비례 2번)이 의원직을 상실했다. 이 때 공직선거법 제200조 2항의 비례대표 승계 제한 규정 때문에 3석이 공석으로 처리되었으나 2009년 10월 29일 선거범죄로 인한 당선무효시 비례대표 승계를 제한하는 규정이 위헌으로 판결되면서 곧바로 3석이 승계되었다. 2008년, [[강재섭]]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탈당 인사들의 복당을 불허한다는 방침이었으나, 이명박과 박근혜의 회동을 거쳐 복당 불허 방침을 철회했다. 그 결과 지역구 의원 5명을 포함한 인사들이 모두 한나라당으로 복당했다.[* 비례대표 의원들은 탈당하면 의원직이 상실되는 특성상 계속 잔류하였고, 미래희망연대가 한나라당과 통합하면서 들어온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