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륵사 (문단 편집) == 개요 == [[전라북도]] [[익산시]] [[미륵산]] 기슭에 위치했던 [[삼국시대]] [[백제]]의 사찰. [[백제]] [[무왕(백제)|무왕]]이 639년 창건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동요|서동 설화]]와 관련되어 여러 이견이 나오며 설왕설래하는 상황이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ttachment/Mtemplesky02.jpg|width=100%]]}}}|| || 미륵사 복원 모형. || 백제의 절로는 최대 규모의 호국사찰이다. [[신라]]의 [[황룡사]]처럼 백제를 대표하는 [[절(불교)|절]]이며, [[고구려]]의 [[청암리 사지|금강사]]와 함께 [[삼국시대]]의 각 나라를 대표하는 절이라고 할 수 있다.[* (황룡사 담장 밖에서부터 동궁과 월지까지 이어지던 광장을 황룡사 부지에서 제외한다면), 황룡사보다 미륵사가 부지 면적은 2배나 더 넓다. 이는 황룡사는 [[경주시]] 시내 한복판에 지어진 사찰이지만, 미륵사는 당시 텅 비어있던 산자락에 앞뒤로 길게 늘어선 부지에 지어진 사찰이었기 때문. 이에 중심가람 영역 이외에도 진입로와 후원 부분에 많은 별도의 건물 영역이 있었다. 다만 건물 크기는 황룡사에 크게 밀린다. 같은 백제의 사찰 중에서도 건물 하나하나의 규모는 왕궁리 유적 동쪽의 [[제석사지|제석사]]가 더 크다. 일례로 미륵사지 목탑지 한 변의 길이는 18.56m이나 제석사지 목탑지는 21.2m이다. 그나마 목탑지가 황룡사에 비벼볼만한 건물이고, 다른 건물들은 황룡사와 비교가 안 된다. 물론 미륵사 건물도 엄청 크지만. 이렇게 된 이유는 미륵사는 3원 양식을 채택하여 탑도 3개, 금당도 3개가 있었므로 각 건물의 규모는 거대한 절 부지 면적에 비해서는 작아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에서 석탑양식을 처음으로 창안해 낸 미륵사의 어마어마한 역사적 의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또한 가장 거대한 백제 [[석탑]]이 있는 절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커다란 절은 지금은 터만 남아, 반쯤 남은 미륵사지 [[석탑]]과 당간지주만 휑하니 서 있다. 1966년 미륵사가 있던 자리(익산 미륵사지)를 [[대한민국 정부|정부]]가 사적 제150호로 지정했으며, 관련 유적으로는 마룡지[* 쌍릉에서 3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연못. 무왕의 어머니가 이곳의 [[용]]과 인연을 맺어 무왕을 낳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현재는 연동제란 이름의 저수지로 쓰이고 있으며, 익산시서는 이곳을 공원으로 정비할 계획을 짜고 있다.]나 [[왕궁리 유적]] 등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