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륵사 (문단 편집) == 명칭 == 미륵사는 명칭에서 드러나듯 [[미륵신앙]]과 관련된 절이다. [[불경]]에 따르면 미륵은 [[수미산]] 위쪽 도솔천(兜率天)에 거하지만, [[석가모니]]가 열반하고 56억 7천만 년 뒤 인간들이 사는 사바세계에 현신한다. 미륵은 지상에 나툰 뒤 부처로서 용화수(龍華樹)라는 나무 아래에서 단 3번 설법하여 모든 중생이 깨달음을 얻게 한다고 한다. 미륵이 도래한 세상을 용화세계(龍華世界)라 부르는데, 마치 이상향과 같아 사시사철이 화창하고 사람들은 모두가 평등하고 화목하게 지낸다고 한다. 현실의 고난에 스러지던 사람들은 죽어서 미륵이 있는 도솔천에 태어나거나,[* [[아미타불]]이 있다는 서방정토에 태어나길 바라는 신앙과 다르다.] 또는 미륵불이 가까운 미래에 현세에 내려오기를 바랐다. 이러한 바람에서 미륵불신앙이 탄생하여 널리 유행하였다. 익산 미륵사지의 뒷산 이름이 지금은 '미륵산'이지만 고서에 따르면 옛 지명은 '용화산(龍華山)'이었다. 용화수 아래 미륵이 있듯, 용화산 아래 미륵사가 있도록 배치한 것이다. 미륵사 역시 이러한 신앙과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당시 [[백제]]는 몰락의 길을 걷는 중이었다. 수도를 2번이나 옮겼지만 외세의 위협은 사라지지 않았고, 국력을 키우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배층이건 민초건 미륵불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금당에는 미륵불상을 모시고 금당의 지하에는 물을 채울 수 있도록 만든 것이 미륵불이 내려오기를 바라는 의도를 반영한 것이라는 가설은 이러한 추측에서 비롯되었다. 미륵사는 규모가 장대하거니와 거대한 탑도 3기나 배치하여 공력을 기울였으므로, 웬만큼 강한 권력이 없다면 세울 수 없을 절이었다. 무왕 시기에 이런 절을 지은 데에는 부처의 힘으로 나라가 도움받기를 바랄 뿐만 아니라 약해지는 왕권을 강화하려는 목적도 있었던 듯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