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법도 (문단 편집) == 사연이 많은 미법도 == 미법도는 섬은 작지만 위치때문에 갖가지 사연을 많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섬이다.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에 미법도에 대한 기록이 하나 있다. >[[사간원]]에서 사복시(司僕寺) 서리(胥吏) 탁주한(卓柱漢)의 부정을 밝히며 처벌을 요구했다. 국가에서 필요한 말을 관리하는 관청인 사복시 관리 탁주한이 강화 미법도 둘레 8리의 목장을 폐현(廢縣)으로 문서에 올려놓고 [[세금]]을 모두 착복[* 남의 금품을 부당하게 자기 것으로 하다.]했다는 것이다. 탁주한은 [[석모도]] 목장의 세금도 착복했다. 하지만 탁주한은 처벌받지 않았는데 조정에 그를 비호하는 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화군의 10개 섬 중 미법도는 분단의 아픔을 가장 많이 겪은 섬이 되었다. [[1953년]] [[정전 협정(6.25 전쟁)|휴전협정]]이 체결되면서 만들어진 바다의 군사분계선은 미법도가 겪어야 할 불행의 시작에 불과했다. >미법도는 [[1973년]]에 35가구 225명, 분교생 30명이 있었다. [[한국전쟁]]이 끝나면서 해상 [[군사분계선]]이 미법에 그어지게 되었다. 때문에 [[북한]]의 무장간첩이 드나들기에 용이하여 전략상 육지로 이사를 하게 했다. >[[1965년]] [[10월]] 일명 '함박도 사건'으로 주민들의 집단 납북 사건이 터졌다. >[[1976년]]부터 [[1983년]]까지 주민들이 총 다섯 차례나 간첩으로 몰렸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