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야기현 (문단 편집) == 역사 == 미야기현은 예전에 [[무츠#s-1|무츠노쿠니(陸奥国)]]의 일부였다. [[혼슈]] 북쪽의 무츠노쿠니는 토착민인 [[에미시]](아이누인)의 땅을 점령해 형성되었고, 북쪽으로 확장해 가장 큰 [[율령국]]이 되었다. 당시의 중심 지역도 현재의 미야기현이었다. [[709년]]에 무츠노쿠니와 주변의 에치고노쿠니(越後国) 정부에 대항하는 폭동이 있었다. 군대가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즉각 파견되었다. [[센고쿠 시대]]에는 다양한 가문들이 무츠노쿠니를 다스렸다. [[우에스기]]씨(上杉氏)는 남쪽 아이즈에 본거지가 있었고 난부씨(南部氏)는 북쪽의 모리오카에 있었다. 현재의 미야기현 지역에 있었던 대표적인 다이묘는 다테 가문으로, [[도쿠가와]]씨의 가장 가까운 동맹인 [[다테 마사무네]]는 현재 도호쿠 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인 [[센다이시|센다이]]를 건설했다. 그는 이곳에 성을 세우고 본거지로 삼아 무츠노쿠니를 통치했다. 센다이 다테 가문은 실질 [[고쿠다카]]가 100만 석에 달하는, 전국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큰 영지를 가진 다이묘였다. 특히 엄청난 양의 쌀을 생산하여 에도로 수출했고, 정치적으로도 도자마 번들 중 친도쿠가와 성향이 강해 우대받은 편이었다. 하지만 막말로 갈수록 번정 개혁 실패로 재정난에 시달렸다. [[보신 전쟁]]에서는 [[아이즈 번]]이 신정부의 처벌을 피하도록 구명하려다가 오우에쓰 열번동맹의 수장으로 말려들어갔고, 신정부에 맞서 싸우다가 완패했다. 아이즈만큼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화족]]으로서 수여된 작위가 백작위에 머무르거나 신정부의 주요 인사에서 배제되는 등 유무형의 손해를 보았다. 2011년 3월 11일에 발생한 [[도호쿠 대지진]]으로 인해 진도 7에 해당하는 강진, 높이 10m의 [[쓰나미]]가 해안을 덮쳐 도호쿠 대지진에 의한 쓰나미 피해가 제일 컸던 곳이다. 또한 2011년 4월 8일, 이곳에 있는 오나가와 [[원자력발전소]]의 외부전원이 규모 7.4 지진에 이은 쓰나미에 의하여 파괴되었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방사능]] 누출 사고는 없었지만 미야기현 아래의 [[후쿠시마현]]에 위치한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는 최악의 사고가 발생하여 인해 그곳에서 날아온 방사능(세슘 등)에 오염되었다.[* 발전소가 폭발하고 바람에 의해 북서쪽으로 방사능이 날아갔는데, 지도에서 보면 알 수 있지만 후쿠시마의 바로 북쪽이 이곳이다... 물론 직격타를 맞은 후쿠시마 원전 바로 근처에 비하면 선녀수준이고 2020년대 들어서는 공기중에 검출되는 방사능은 거의 없다.(시간당 40nSV/h 전후로 114~164nSv/h가 검출되는 서울시의 삼분의 일정도가 검출되고 있고, 미야기 현의 홈페이지 및 센다이 시청 앞 LED 전광판으로 실시간 공간선량을 확인 할 수 있다.), 제염작업 완료 후 토양, 수질, 농수산물에서 검출되는 방사선량도 모두 기준치 이하로 안전] 이로인해 미야기현의 특산물인 [[멍게]] 및 농수산물은 아직 [[한국]]에서 수입 금지된 상태다.[* 사고 전까지는 한국에서 소비되는 멍게 70%가 여기서 나왔다.] [[2022년 3월 후쿠시마 지진|2022년 3월 16일 규모 7.4의 지진이 발생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