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민립대학설립운동 (문단 편집) == 오해 == *흔히 일제가 민립대학설립운동을 무마하기 위해 [[경성제국대학]]을 설립하였다고 알려졌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전에는 [[경성제국대학]]의 설립을 민립대학설립운동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것으로 설명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저 우연히 시기가 맞아떨어진 것일 뿐.[* 정준영 등의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조선총독부]]는 민립대학설립운동 이전부터 독자적으로 [[조선]]에서의 대학 설립을 계획하고 있었다. 1922년 조선교육령의 전면 개정 반포 이전인 1921년 봄에 조선총독부는 조선에 세워질 [[제국대학]] [[대학예과|예과]] 입시자격을 주기 위한 4년제 고보 졸업생 대상 보습과를 개교했고, 또 <조선총독부 재외연구원 규정>을 제정하여 대학예과/학부 교수요원 양성을 시행했으며 1923년 예과 개교 및 1925년 학부 개교를 목표로 1922년부터 [[대학예과|예과]] 부지를 확보하고 건설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 한 사실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일본 본토의 최고학부인 '[[제국대학]]'을 식민지에 이식하기로 결정한 데 있어서는 다소간 영향을 주었을지 모르나 민립대학 설립대학운동으로 경성제대가 설립되었다는 주장은 이미 학계에서 폐기된 설이다.[* 자세한 내용은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에서 간행된 「식민지식과 근대권력 - 경성제국대학 연구」(2011) 참조.] *[[경성제국대학]]에 조선인의 실력 양성에 도움이 되는 정치, 경제, 이공학부는 설치하지 않고 식민 통치에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법학, 의학부를 중심으로 설립되었다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본토의 [[제국대학]]도 [[도쿄대학|도쿄제대]], [[교토대학|교토제대]]를 제외하면 [[경제학부]]를 독립시킨 곳은 한 곳도 없었으며 정치학부는 지금도 일본에서 독립된 곳이 거의 없고, 전부 법학부에 속해 있다.[* 1930년대 들어서 [[도호쿠대학|도호쿠제대]]의 경우, 법문학부에서 경제학사를 수여할 수 있도록 학칙을 변경하였다. 비슷한 시기 경성제대 역시 비록 경제학사 학위를 수여하지는 않았으나 법학과 내에 경제학 중심 이수 과정을 두었다.] 오히려 식민지 거주 일본인들은 [[취직]]이 잘 되는 이과, 공과, 농과 계통의 학부 개설을 희망했으며 [[조선총독부]]가 법문학부, 의학부만을 개설하자 조선인들의 환심을 얻으려 한다며 불만을 품기도 하였다.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는 1938년 예과 신입생부터 모집을 시작하여 1941년에 학부 개강하였다. *조선의 [[고등교육기관]] 설립만을 막았다는 견해도 있으나, [[대학령]] 자체가 1919년 4월 1일 시행되었기 때문에 이전까지 일본 본토에서조차 공립/[[사립대학]]의 설립은 불가능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양대 사립대학인 [[소케이]]([[와세다대학]]과 [[게이오기주쿠대학]])도 대학령 시행 전까지는 자체적으로 '대학'이란 명칭을 쓸 수는 있어도 그게 공식 대학으로 인정받지 못했으며, 대학령 반포 이후에야 신청을 거쳐 1920년 2월부터 문부대신의 인가를 받고 [[구제대학]]으로 승격되기 시작했다. 소케이가 이날 동시에 최초로 대학으로 승격되었다. 소케이가 일본의 양대 최상위 명문 사학으로 지금까지도 자리매김하고 있는 건 일본 최초의 사립대학이라는 역사성과 상징성에서 시작되었다.]. 이후에 개정된 대학령에 의거하더라도 재단 기본재산 예치금 최소 50만 엔 등 재정 조건을 비롯한 [[구제대학]]인가를 신청하기 위한 요건이 워낙 까다로웠기 때문에 조선에서는 미국 기독교재단의 [[연희전문학교]],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및 [[인촌 김성수]]의 [[보성전문학교]] 등이 구제대학 승격 구상을 갖고 있었으나 1945년 8월 종전시까지 단 한 곳도 사립 구제대학으로 승격하지 못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조선에서는 최고학부로 설립된 [[경성제국대학]]이 유일한 [[구제대학]]이었다. 연희전문학교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가 [[연세대학교]]로, 보성전문학교가 [[고려대학교]]로 승격된 것도 해방 이후였다.] 참고로 법문학부와 의학부의 단 2개 학부로만 구성된 [[경성제국대학]]이 혼자서 그렇지 않아도 만년 [[적자]]로 일본 본토 세금을 받아와야했던 [[조선총독부]]의 학무국(現 교육부) 전체 예산의 1/3~1/2 가량을 소비했을 정도다. 그만큼 당시 기준으로 [[구제대학]]이라는 것이 고급 엘리트 교육기관이었으며 설치와 유지를 위해 엄청난 비용이 들었던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