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민병돈 (문단 편집) === 육사 졸업식 항명 사건 === 그러다가 1989년 3월 21일, [[육군사관학교]] 제45기 졸업식에서 당시 [[육군사관학교장]]이었던 민병돈은 대형 사고를 일으킨다. 바로 대통령 [[노태우]]를 공식 행사에서 무시하고 그의 정책을 강도 높게 비난한 것. [[파일:external/pds.joins.com/htm_201407202482520102011.jpg]] 졸업식이 시작되고 교장 식사 순서가 되자 민병돈은 연단으로 나가면서 임석 상관이었던 노태우에게 경례를 하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단순히 실수인 줄 알았는데 연설이 시작되면서, 민병돈은 노태우 대통령에게 더욱 노골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단순 졸업 축하 식사를 한 것이 아닌, '''대통령을 뒤에 두고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을 10분 동안이나 강도 높게 비판한 것이다.''' 군 장성이 정부 정책을 비판한 것도 전례 없는 일이었으며, 더욱이 대통령을 뒤에 두고 그런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는데, 상관인 대통령을 기다리게 하지 않기 위해 간단하고 짧게 해야 하는 교장 식사를 10분 가까이 끌며 대통령을 비판한 것이다. 그리고 연설을 끝나고 돌아오면서도 노태우 대통령에게 끝까지 경례를 하지 않으면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방금 전 경례를 하지 않은 것은 실수가 아니라 '''나는 당신을 나의 상관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공표한 격으로, 제대로 작심하고 반항을 저지른 것이었다. 당황한 노태우 대통령은 그를 지나치면서 "민 교장, 왜 이러는 거야?"라며 불평했다고 한다. 그리고 졸업식이 끝나면 대통령이 육사 식당에서 밥을 먹는 관례가 있었는데, 민병돈 교장은 그것도 막았고[* 대통령이 육사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원래 그 시설을 써야 할 장교들이 식사를 못한다는 이유였다.], 다른 데서 식사를 하자는 노태우 대통령의 제안도 거부했다. 다음날 당연히 그의 육사 1기수 선배인 당시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육군참모총장]] [[이종구(군인)|이종구]]는 그를 강도높게 질책했고, 민병돈 장군은 즉시 사임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https://news.kbs.co.kr/mobile/news/view.do?ncd=3685997|KBS뉴스 영상]] 20일 후 육사 교장에서 경질되었고 50일 후에는 예편당했다. 이 일은 보수파였던 민병돈이 적국이었던 공산권 국가들과 수교하는 노태우 대통령에 대한 강한 이의 제기라고 보는 시각이 있으며, 집권 후 전두환계 군맥들을 숙청한 것에 대한 전두환계의 불만이 섞여있다는 시각도 있다. 민병돈 본인 말로는, 노태우 대통령이 인기가 떨어지니까 "북한은 적이 아니라 동반자다."라는 말로 정국은 전환시키려고 하자, 전방에 있는 군인들이 혼란스러워했다고 한다. 북한이 적이 아니면 나라를 지키기 위해 그렇게 고생하는 군인들이 뭐냐는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나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 보신주의 때문에 이런 문제에 대해 아무런 지적도 하지 않자, 자신이라도 나서야 겠다는 결심을 품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군사정권에 비판적이거나, 혹은 일부 보수층들 사이에서는 민병돈에게 "대통령에 대드는 패기, 오오~"라는 식의 허세 섞인, 혹은 6월 항쟁 당시의 군부 동원 거부에 대한 호평이 확대된 나머지, 이 육사 교장 시절의 항명까지 미화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는 그렇게까지 해석될 일이 못된다. '동유럽 등 공산권과의 국교 정상화'를 비롯한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은 서울올림픽으로 대표되는 대북 체제경쟁 승리, 국력 우위의 입증을 통한 한국의 자신감에 바탕을 둔 것이었으며, 약 10년 후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에서 제기되었던 '퍼주기', '유화정책'이라는 식의 비난도 덜 받았다. 그 전에 북방정책을 평가하는 것과는 별개로, '''군인이''' 엄연히 민주적-합법적 절차에 따라 선출된 군 통수권자[* [[12.12 군사반란|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체육관 선거]]로 대통령이 된 [[전두환|전임자]]와 달리, [[노태우]]는 [[신군부]] 정권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긴 했으나 어쨌든 [[6.29 선언]] 이후의 [[9차 개헌|직선제 개헌]]을 통해 [[13대 대선|대통령 선거]]로 당선되었기에 정치적 정당성은 전두환과 비교가 불가능하다. ] 앞에서, '''공식적인 자리에서 대통령의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대통령에게 항명을 저지른 이 행위'''는 6.25 전쟁 당시 맥아더가 트루먼에게 했던 것과 다를 바 없는, '''명백한 [[문민통제]] 위배이자 군의 정치 개입'''이라고 봐야 한다. 본인은 북방정책이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가치를 부정하는 행위라고 봤기 때문에 이런 행동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사건은 단순히 야전 군인의 이념적인 경직성을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된다.[* 물론 그 개인의 신념 때문일 수도 있다. 애초에 서슬퍼런 전두환 정권 시절에도 민따로라 불릴 정도로 자기 길을 가는데 거기다 본인 스스로 군인은 명령에 복종해야 하지만 옳지 못한 명령은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말대로라면 6월 민주항쟁때나 이 때나 대통령 뜻을 거부한 것은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그렇게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게다가 본인은 한국전쟁 참전용사에 포로가 되었다 탈출하는 과정에 부상까지 입었으니 반북감정이 얼마나 높겠는가. 두 가지를 결합해 보면 본인 입장에서는 북방정책에 매우 불만이 클 수 있다. 단지 선을 넘은게 아쉬울 뿐이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