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민병두 (문단 편집) === 기자 생활 === 경기고등학교 재학 시절 ‘주간경기’라는 타블로이드 신문을 만들면서 글쓰기에 재미를 붙였으며, 이는 향후 기자생활의 원동력이 되었다. 성균관대학교 무역학과 졸업 후 월간 잡지사에서 발굴기사 등을 다루는 것으로 기자생활의 첫 발을 내딛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만화대중지인 '만화광장' 창간멤버이다.(그래서 만화계 출신 최초의 국회의원으로도 불린다) 이 후 일간지 ‘[[문화일보]]’에서 정치부·과학부·국제부에서 기자로서 취재활동을 했고 워싱턴 특파원, 정치부장, 야당반장, 국회반장을 역임하였다. 우리나라 최초로 시민들이 국회의원 의정활동을 모니터하는 기획을 시도했다. '국정감사를 감사한다'는 기획은 당시 국회의원들의 거부감으로 방청 자체를 불허하는 사건이 발생했으나, 이를 계기로 상임위원회가 시민들에게 개방되었고 오늘날 시민단체들의 일상적인 모니터가 가능하게되었다. 1996년 인터넷이 막 도입되던 시절에는 세상의 변화에 앞서가겠다며 과학부 기자를 자원했고, 미디어융합을 공부하겠다며 [[삼성장학생|삼성언론재단]]의 지원을 받아 [[미국]] [[시라큐스 대학교]] 뉴하우스(언론대학원)에 연수를 다녀왔다. 이 때 배운 사진실력은 프로급이다. [* [[시라큐스 대학교]] 로스쿨을 나온 [[조 바이든]]이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되자, 이 당시의 경험을 글로 쓴 적 있다. [[https://blog.naver.com/byungdusi/222139355242|#]]] 1999년 [[재보궐선거]]에서는 후보들에 대한 [[시민단체]]의 감시활동 강화[* 24시간 시민단체의 후보 캠프 감시 허용, 회계장부의 공개]를 요구하여 후보들에게 동의를 얻어냈으며, 이는 훗날 선거법을 개정하고 선거문화를 개선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기자만큼 매일 매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직업은 없다. 기자가 깨어 있어야만 세상이 변화하고 발전한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활동하면서 ‘국정원 정치개입 문건 확인’, ‘국회 노동위 돈봉투 사건’ 같은 수많은 특종을 잡아 터뜨리며 다수의 기자상을 수상했다. 워싱턴 특파원시절에는 교육문제에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한국계 미국인]]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한 고교졸업자들의 교육일기를 <완벽한 학생들>이라는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정치부장, 야당반장, 국회반장시절에는 특종뿐만 아니라 의제설정 등으로 이슈를 주도하여 진보·중도·보수 언론을 가리지 않고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