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민사작전 (문단 편집) === [[미군]] === || {{{#!wiki style="margin: -5px -10px -5px" [youtube(EddaxBr8eYE, height=280)]}}}|| 지구방위군, [[천조국]]이라 불리며 위엄을 자랑하는 미군이지만 '''민사작전은 최악인 것으로 유명하다'''. [[베트남 전쟁]],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아프간 전쟁]]에서 온갖 굴욕을 맛본 이후로는 미군이 가장 못해먹는 것으로 낙인찍힌 지 오래다.[* 후술할 한국군의 민사작전 능력이 좋은 평가를 받게 된 게 미군에게 전수받은 것이 시작임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영국군도 세계 대전 이전에도 [[세포이 항쟁]] 이후 민사작전 능력은 있었다. 이스라엘도 미국보다 최악이었지만 폭격할때 루프 노킹을 활용해서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을 대피시킨다.] 미군의 민사작전 능력은 유럽 지역에 한정한다면 뛰어난 편인데, [[제1차 세계 대전]] 때부터 시작해서 경험도 매우 풍부하다.[* 한국군의 경우는 베트남전에서 민사작전이 처음으로 빛을 발한 것이다.] 다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로는 문화적 차이와 가치를 생각하지 않는 경솔한 작전, 장병들의 질 관리 때문에 효과가 적은 경우가 많다. [[6.25 전쟁]] 당시 [[빨치산]]이 [[해인사]] 근처에 주둔하고 있다는 이유로 '''해인사를 폭격하라고 지시'''한 것[* 해당 명령은 [[김영환(군인)|김영환]] 장군의 목숨을 건 [[항명]]으로 실행되지 않았고,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은 간신히 폭격으로부터 지켜질 수 있었다. 해인사는 지금까지도 김영환 장군의 덕을 기리고 있다.]과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 [[베트남 전쟁]],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이나 [[이라크 전쟁]]에서의 [[킬 팀]] 사건과 [[칸다하르 학살 사건]], [[미군 이라크 일가족 살인사건]] 등이 대표적인 민사작전 실패 사례다. 이렇게 된 이유에는 미국의 통치 방식 자체의 문제에 있는데 우선 미국 특유의 실용주의적 접근 탓에 현지 정세에 대한 이해도와 실무 능력보다는 군사적 작전 능력과 [[친미]] 성향을 우선으로 보는 경향, 그리고 [[문화상대주의]]가 결여되어 있는 미국 사회 특성상 현지 문화에 대해 철저하게 분석하려는 의지를 느끼지 못하는 오만함이 팽배해 있다. 점령 이전의 과정도 문제인데, 상단의 내용처럼 작전을 수행할 때에도 작전으로서의 효율성 등을 우선하여 현지의 문화적 사정 같은 것은 주된 고려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이렇게 실용주의적인 접근방식은 현지의 문화적 특성이 장애물로 기능하는 상황에서도 이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에 효율적인 작전 수행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작전에 성공하여 점령에 성공한 이후로는 작전 성공 이후를 생각하지 않은 경솔함의 대가로 돌아오는 양날의 검이 된다. 또한 미국이 침공하거나 외국으로 파병을 보냈던 전쟁은 많이 겪어봤었지만 외국에게 침공당한 전쟁은 거의 없다시피한 것 역시 문제의 근원이다. 미국이 타국에게 침공당한 것[* 여기서의 침공은 미국의 영토에 외국의 군대가 직접 발을 들인 경우에 한한다.]은 1812년의 [[영미전쟁]]을 제외하면 없고 그나마도 너무 옛날 일이다. 따라서 본인들이 전쟁의 참화를 겪었던 적이 없다보니 나라가 전쟁터가 된 사람들의 심정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 미군의 잘못된 점령지 정책은 한국사에서도 확인되는데, [[태평양 전쟁]]의 승리 후 조선을 일제로부터 해방시킨 후 [[38도선]] 남쪽을 통치한 [[미군정]]이 문제 사례로 꼽힌다. 미국은 [[여운형]]이 세운 [[조선인민공화국]]도 인정하지 않았고 [[연합국]] 측에서 함께 싸운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인정하지 않은 채 미군정만을 합법적인 정부라고 규정했다. [[한민족]]의 영토를 점거하면서 한민족의 자치정부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에서 문제가 시작된 셈이다. 또한 미군정의 장이었던 [[존 리드 하지]] 중장은 미군정 이전까지 행정경력이 없는 사람이었고, 한반도로 진주하기 전에 적군인 일본군에게서 조선 사회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실수를 범했다. 일본군이 남한 사회가 굉장히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고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날 기운이 다분하다는 부정적이고 왜곡된 정보로 미군을 선동했기 때문이다.[[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1071800180004617|#]] 이 결과 하지 중장은 9월 8일 미군의 인천 상륙 전까지 한반도의 치안권을 일본군에 주었고, 그 결과 인천항에서 미군을 환영하려던 한국인 청년 2명이 일본경찰의 총에 죽는 참사가 벌어졌다. 여기서 비극이 끝났어야 하는데 참사가 계속되어 미국에까지 보도되었다. [[뉴욕타임스]] 1945년 9월 12일 보도를 보면 해방 이후인데도 일본 경찰은 한국인 35명을 죽였다. 그 이후로도 하지 중장은 일본인들을 가장 신뢰하여 미군정에 일본인 관리들을 임명했고, 심지어 한국인을 '준 우호적' 또는 '해방된 국민'으로 대우하라는 직속상관 [[맥아더]]나 [[조지프 스틸웰]] 장군의 조언도 대놓고 무시하고[* 물론 스틸웰 장군도 중국 전선에서의 행보를 보면 결코 좋은 평가를 내리기는 힘든 인물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이 부분만큼은 스틸웰 장군의 조언이 맞았다.] 휘하 장교들에게 한국인을 '준 적국인'으로 취급하라고 지시하기까지 했다.[[https://www.google.com/amp/s/m.nocutnews.co.kr/news/amp/5585161|#]] [[https://shindonga.donga.com/3/all/13/2170096/1|#]] 한국인들이 가장 혐오했던 일본인들을 해방 후에도 관리로 임명하고[* 한국인 실무자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일본인들을 고용했다 해도 이들의 브레이크 역할을 충분히 했다면 그나마 욕을 덜 먹었을 것이다. 그마저도 하지 않아서 하지 중장이 더더욱 비판과 영구까임권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한국인에 대한 태도를 적대적으로 해대니 미군에 대한 [[반미]] 운동이 빗발쳤다. 결국 하지 중장이 저지른 일본인 고용의 뒷처리를 맡아 일본인들을 직접 짜른 건 하지의 상관인 맥아더도 아니고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이었다. 그야말로 미군정은 한반도에서 활동할 민사능력과 태도가 갖춰지지 않은 최악의 민사작전을 벌였던 것이다. 미군정의 행정 무능력과 한국인들에 대한 무지는 미곡수집령과 경제난으로 발전했고 [[대구 10.1 사건]], [[제주 4.3 사건]], 결과론적으로는 [[남북분단]]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이런 미군정의 실패는 멀리 중동에서도 반복됐다. 실무능력에는 관심이 없고 미국 말만 잘 들으면 되니 부패하고 무능한 자들이 미국에 대한 충성심만을 내세우며 집권해서는 나라 재건하라고 준 원조금을 빼돌리고, 현지의 문화에 관심이 없으니 [[모스크]]에 직접 미군이 들어가고 여성에 대한 노출을 금기시하는 현지인 집 내부 구역에 당당하게 쳐들어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라크를 예로 들면 테러리스트 잡겠다고 민간인 집에 미군들이 쳐들어가 가문의 여성들이 외간남자들에게 노출되는 일이 잦았는데 [[이슬람권]]에서는 집안 수장의 허가 혹은 위급상황 같은 정당한 이유 없이 여성들의 구역에 타인이 고의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범죄'''로 취급된다는 걸[* 그래서 이슬람권에서는 손님 접대도 남자들이 다 도맡아서 한다. 물론 이를 반대로 생각하면 그만큼 이슬람권의 성차별이 심각하다는 증거다.] 생각하면 정말 몰지각한 일을 한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민심이반이 극심해졌고, 결국 현지인들이 미군에 협조를 하지 않는 것을 넘어 반군에 협조하게 되는 등 전황이 악화된다. 뒤늦게 이라크군과 경찰을 먼저 들여보내고, 이들이 수습을 못하면 동의를 받아 미군이 들어가는 형식으로 바꾸면서 반발이 좀 줄었지만 이미 한참 늦은 뒤였다. 한 마디로 미군은 [[무지성주의|외래 문화에 대한 부족한 이해]]와 지나친 자국 중심주의로 민사작전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정치외교학에서는 다른 나라에 얼마의 이익을 주어 Win-Win으로 보이게끔 [[출구전략]]을 마련하고[* 전쟁에 완전한 승리는 없고 양방 중 한쪽이 압도적으로 강하다 해도 강한 쪽도 피해는 입는다. 출구전략은 적당히 전쟁을 수행 후 이런 피해를 최소화할 명분과 실리를 찾게 도와준다. 출구전략이 없으면 [[공세종말점]]에 이르기까지 [[소모전]]으로 흐르고 그로 인한 피해가 막심해진다. 출구전략이 실패해 미국이 진 전쟁이 베트남 전쟁과 아프간 전쟁이다.] 실은 자국의 이익을 최대화한 것을 성공적인 외교로 평가하는데, 미국은 '''외교의 연장선인 전쟁'''에서 타국의 이해와 이익에 약간의 양보마저 없이 타국을 철저히 뭉개고 자국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는 경향이 너무 심했다. 위의 영상에서도 그런 점을 지적하는데 미국이 베트남전이나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에서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밀어붙이더라도 전략적으로 패배할 수 밖에 없는 약점 제1순위로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는 것이 비서구권 국가들에 대한 민사작전에 무지하다는 것이다. 수십 년에 걸쳐 지적되고 있지만, 더럽게도 못 고치고 있다. 미군의 경우는 한국군의 "'''[[민심]]을 얻는다'''"와 비슷한 개념으로 "마음과 정신을 쟁취한다.[* 여기서 win은 싸움에서 이기는 것 뿐만 아니라 이긴 대가로 그에 따른 상, 전리품 따위를 얻어낸다는 뜻으로, 즉 '쟁취'한다는 의미이다.](Winning hearts and minds)"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하며,[* 해당 표현은 영국의 말레이 공산당 토벌작전이었던 [[말라야 비상사태]] 때 처음 사용된 표현이었다.] COIN[* Counter-insurgency, 반란 제압, 대게릴라전이다.]과 민사작전을 완전히 별개로 보는 것은 아니지만 구분된 활동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미국 육군]]의 경우 민사 병과가 따로 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