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민속학 (문단 편집) == 일본에서의 민속학 == 일본에서 민속학이라는 학문이 세워지는데 큰 영향을 미친 사회 조건은 2가지이다. 일단 [[에도 시대]]에 크게 발전하여 존황양이 운동가들의 사상적 기반이 된 [[국학(일본)|국학자들]]이 있다. [[에도 막부]] 체제에 불만을 품은 몇몇 무사들은 유교적 근왕사상에 따라 [[교토]]에 사실상 유폐되어 있는 [[천황]]과 공가들의 복권을 추진하는 한편, 고대 일본으로부터 전해내려오는 일본만의 풍토를 연구했다. [[일본서기]]나 [[만엽집]]등 고서들을 연구하여 일본의 예술적 정서 '모노노아와레'의 개념을 정립하여 일본 고유의 정신세계를 굳건히 하고자 했다. 또한 고유 종교 [[신토]]에서 외래 종교 [[불교]]의 영향을 걷어내기 위해 신화와 각 지역 [[신사(신토)|신사]]들의 전승이나 지방 전설들을 연구하였다. 이들의 사상과 이념은 [[일본 제국]] 성립에 공헌한 유신지사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현대 일본 민속학을 정립한 조건은 [[메이지 유신]] 이후 개항을 통해 급속히 이루어진 구미(歐美)권과의 접촉오로 인해 짧은 기간에 이룩한 산업화가 있다. [[메이지 시대]]의 일본은 [[구미권]]과 상호교섭 과정에서 구미권 문화를 전방위로 도입했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본 내 문화에 대한 관심과 재평가를 해야 한다는 요구가 생겨났고 구미권과 다른 일본'만'이 지니는 문화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1890년대를 기점으로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이는 일본 내 [[도시화]]를 촉진시켰고 이는 곧 농촌 지역 [[이촌향도|이농화]] 현상에 불이 붙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농촌지역에 불어닥친 급격한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존 농촌지역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시대의 요구가 있었다. 구미권의 근대학문 체계를 공부해 온 엘리트층을 중심으로 이 같은 상황을 이해하는 학문 관점으로서 사회학, 인류학, 경제학 등 다양한 근대학문틀이 동원되는 가운데 영미권의 folklore 또는 독일의 volkskunde에 대한 관심 역시 생겼다. 일본민속학의 대부인 야나기타 구니오(柳田国男) 역시 초창기 농정관료였고 유럽 유학 도중 인류학, 사회학 등을 수학한 경함이 있음은 이 같은 상황을 반증한다. 오히려 앞선 조건들로 인해 민속학이 제도권으로 포섭되는 과정에서 국가에 복무하는 학문이 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여겨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