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민제(레) (문단 편집) ==== 응우옌반후에의 북벌과 도주 ==== 응우옌반후에는 응우옌흐우찐이 벌인 일련의 행위를 모두 알게 되었다. 이전에 응우옌반후에가 남쪽으로 회군할 때 별장(別將)인 응우옌주에(阮裔)를 남겨 응에안(乂安)을 진수하게 한 적이 있었다. 응우옌주에는 은밀히 다른 뜻을 품고 탕롱의 응우옌흐우찐과 결탁하였다. 응우옌흐우찐은 응에안을 도모할 수 있다고 여겨 쩐꽁싼(陳功燦) 등을 푸쑤언(富春)에 사신으로 보내 응우옌반후에에게 응에안을 후 레 왕조에 할양할 것을 요구하였다. 응우옌반후에는 크게 노하여 쩐꽁싼 등을 강에 던져 익사시켰다. 이 일이 있은 뒤로 응우옌반후에는 응우옌흐우찐을 정치적 기회주의자로 여겨 그의 사람됨을 매우 증오하였다. 이때 응우옌반후에는 응우옌흐우찐이 탕롱에서 이루고자 하는 바가 있음을 알고 사신을 보내 응우옌흐우찐이 푸쑤언으로 돌아올 것을 요구하였다. 응우옌흐우찐은 북하 지역의 경내가 편안하지 않음을 이유로 들어 거절하였다. 이에 응우옌반후에는 부반념을 보내 응우옌흐우찐을 토벌하게 했고, 민제는 응우옌흐우찐에게 적을 막으라고 명하였다. 부반념은 야밤을 틈타 응우옌흐우찐을 크게 격파하였고, 응우옌흐우찐은 도망쳐 탕롱으로 돌아가 민제 및 태후, 황비, 종실 등 사람들을 데리고 성을 버리고 경북진(京北鎭, 현재의 박닌성)으로 달아났다. 부반념은 군사를 이끌고 추격하여 따라잡았고, 응우옌흐우찐을 사로잡아 살해하였다. 부반념이 탕롱에서 레주이껀을 감국(監國)으로 옹립하자 민제는 찌린현(至靈縣)으로 달아나 응우옌흐우찐의 옛 장수인 호앙비엣뚜옌의 영접을 받아 쩐딘(眞定)에 도착했으며, 쯔엉당꾸이(張登揆)의 집을 행재(行在)로 삼아 회복을 도모하였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호앙비엣뚜옌이 전투에서 패하고 살해당하자 민제는 여러 곳을 거치다 경북(京北)의 르엉장부(諒江府)로 달아나서 유신(遺臣)들을 규합해 대항하였고, 황태후 응우옌티응옥또는 까오방의 아오아이(奧隘)로 달아났으며, 청나라로 사신을 보내 구원을 청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