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민제(레) (문단 편집) ==== [[찐씨 정권|정씨]]의 복벽 ==== 떠이선 군이 철군한 뒤 민제는 떠이선 군이 후 레 왕조 미래의 최대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의식하였다. 찐 주의 통치가 비록 무너졌다지만 그 세력은 여전히 컸기 때문에 민제는 급히 찐 주의 지지자들을 불러 탕롱을 보위하도록 했다. 이에 각지에서 분분히 병사를 일으켰고, 북하 지역은 다시 혼란에 빠졌다. 그중 찐조아인의 둘째 아들 서군공(瑞郡公) 찐레(鄭棣)는 오랫동안 왕위를 노리고 있었는데, 찐 주의 구신(舊臣) 쯔엉뚜언(張洵)과 즈엉쫑떼(楊仲濟)의 지지를 받아 자럼현(嘉林縣)에서부터 탕롱으로 들어가 점거하였고, 자립하여 찐 주가 되었다. 민제는 그가 자립했음을 듣고 사신을 보내 이를 책망하였으나, 오히려 즈엉쫑떼는 민제의 조서를 찢어 버리고 모욕을 가하였다. 이에 민제는 크게 노하였다. 이와 동시에 쯔엉득현(彰德縣)에 은거하던 곤군공(琨郡公) [[찐봉]] 또한 민제에게 표를 올렸는데, 그 언사가 매우 공순하였으므로 민제는 크게 기뻐하며 찐봉에게 탕롱으로 들어와 근왕하라는 명을 내렸다. 이에 찐봉은 향병(鄕兵)을 이끌고 탕롱을 공격해 들어갔고, 찐레를 축출하였다. 민제는 찐봉을 절제수보제영(節制水步諸營), 평장군국중사(平章軍國重事), 곤군공(琨國公)으로 책봉하고 중임을 맡겼다. 다만 이전의 찐 주와 다르게 이때의 정사는 모두 민제가 친히 관리하게 되었다. 연충후(璉忠侯) 딘티엑니으엉(丁錫壤) 또한 조서를 접하고 군사 2만을 이끌고 탕롱에 왔으며, 찐봉을 왕작으로 책봉하라고 요구하는 동시에 대권을 황실로 봉환하는데 승낙하였다. 민제는 이에 동의하고 찐봉을 안도왕(晏都王)으로 책봉하였다. 다만 오래지 않아 딘티엑니으엉이 석군공 호앙풍꺼와 연합해 함께 민제에게 압력을 가하여 대권을 찐봉에게 넘기도록 하였다. 이는 민제로 하여금 크게 불만을 품게 했고, 민제는 비밀리에 응우옌흐우찐을 불러 병사를 일으켜 근왕하도록 하였다. 응우옌흐우찐은 민제의 명령이라고 속이고 수만 명을 불러 모은 뒤 탕롱으로 공격해 들어가 찐봉을 축출하였으며, 찐 주의 부를 불태워 파괴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