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민주국민당 (문단 편집) == 내용 == [[한국민주당]]은 미군정 체제에서 집권당과도 같은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미군정의 실정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수립되고, 이승만에게 뒤통수를 맞은 상황에서 일반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한 쇄신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하여 한민당의 위원장인 [[김성수(1891)|김성수]]가 1948년 말부터 [[대한국민당(1948년)]]의 [[지청천]], [[신익희]] 등과 의견의 일치를 봄으로써, 한국민주당에서 ‘민주’라는 글자를, 대한국민당에서 ‘국민’이라는 글자를 따서 1949년 2월 10일 민주국민당이 창당된다. 민국당은 창당 때 4명의 최고위원([[김성수(1891)|김성수]]·백남훈·[[신익희]]·지대순)을 선출하여 합의제로 운영하였다. 그러나 후일 보다 능률적인 당운영을 위하여 위원장제를 채택하여 위원장에 신익희, 부위원장에 김도연·이영준, 고문에 백남훈·서상일·[[조병옥]]을 각각 선출하였다. 민국당이 제일 처음 착수하여야 하였던 과제는 헌법을 애초의 상태, 즉 내각책임제로 환원하는 문제였다. 민국당은 헌법을 개정하여 대통령을 국가의 상징적인 존재로 만들고 정치의 실권을 장악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 원내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던 민국당은 1949년 11월 12일 내각책임제 개헌안을 제출, 통과시키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의원들이 [[대한국민당(1949년)|대한국민당]]을 창당하자 이는 무위로 돌아간다. 1950년 1월 27일, 민국당은 다시 한 번 내각책임제 개헌안을 무소속 일부와 제휴하여 개헌을 추진, 같은 해 3월 14일 표결에 붙였으나 부결되어 기대한 바를 달성하지는 못하였다. 개헌 시도에 위기감을 느낀 이승만은 [[자유당]]을 창당했고, 민주국민당은 야당으로서 이승만 정권에게 상당한 탄압을 겪었다. || 사건 순서 |||||||| [[민주당(1955년)]]의 창당 과정 || || 1 || 민주국민당 || [[흥사단]]계([[장면]], [[정일형]] 등)|| [[자유당]] 탈당파([[현석호]], [[이태용]] 등) || [[무소속]] 일부 || || 2 |||||||| [[1955년]] [[9월 18일]] '''[[민주당(1955년)]]''' 창당 || 이후 민주국민당은 [[이승만]]이 [[사사오입 개헌]]을 실행하자 [[흥사단]]계와 [[자유당]] 탈당파, 일부 무소속 등과 통합하여 [[민주당(1955년)]]을 창당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