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밀교(불교) (문단 편집) == 한국의 밀교 == [[한반도]]에는 [[신라]] 때 잡밀(초기밀교)이 들어온 뒤 [[통일신라]] 때 순밀(중기밀교)이 들어왔다고 추정한다. 이미 불교학계에서는 유명한 이야기지만, 우리에게 ≪[[왕오천축국전]]≫으로 유명한 8세기 [[승려]] [[혜초]]도 사실 밀교 수행승이었다. 당시 신라 유학승들이 [[당나라]]에서 배운 밀교는 [[티베트 불교]](후기 밀교)와는 다른 형태의 밀교이다. 즉 한국 밀교는 [[삼국시대]]부터 전해져와서 존재했던 초기 및 중기 밀교이며, 티베트 밀교는 시대가 더 지나고 나서 나타난 후기 밀교이다. [[삼국사기]]에는 유가승 명랑(明朗)법사가 관정경에 의거한 밀교의 의식인 문두루 비법(文豆婁 秘法)을 행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명랑의 문두루 비법은 [[중국]]과 [[일본]]에서 행해지던 치병 목적의 문두루 비법과는 달리, 외적인 재난을 소멸할 때 쓰인다는 특이점이 있다. [[신라]]시대 밀교종단 신인종(神印宗) 총지종(總持宗) 창종됨. * 초기 밀교 신라승 * 밀본(密本) * 혜통(惠通)[* 전설에 따르면 원래 사냥꾼이었으나, 자신이 잡아먹은 [[수달]]의 뼈가 살아 움직이고 굴 속으로 돌아가 새끼들을 끌어안은 것을 보고 살생에 회의를 느껴 출가했다고 한다.] * 명랑(明朗) * 중기 밀교 신라승 * [[혜초]](慧超)(또는 惠超) 금강지(金剛智), 불공(不空)의 제자 * 불가사의(不可思議) 선무외(善無畏)의 제자. 대일경차제법소 지음 * 현초(玄超) 선무외 제자. [[일본]] 진언종 개조 구카이의 스승 혜과에게 태장법을 전함. * 의림(義林) 선무외 제자. 일본 천태종 개조 사이초에게 밀교를 전한 순효의 스승. * 혜일(惠日) 혜과(惠果)의 제자. 금강계 태장계 소실지 전승. * 오진(悟眞) 혜과 제자. 태장계 전승. 인도구법여행. [[고려]] 때 왕실과 귀족 중심으로 크게 발전하였다. 여러 가지 진언과 다라니를 외우는 차제들이 경전으로 많이 나타났다. 국가적 차원에서 금광명경과 인왕경에 의한 법회를 주관하고, 호마를 행하였다. [[몽골]]의 [[원나라]]가 들어서고 나서 중국에는 후기 밀교([[티베트 불교]])가 성행하였다. 그러나 한반도와 일본에는 후기 밀교가 전해지지 않았다. [[원 간섭기]]에 고려 왕에게 시집온 원나라 공주 출신 왕비가 건립한 몇몇 불교 석탑에 티베트 불교 양식에 반영되긴 했지만, [[천태종]]과 수선사 등 기존 고려 토착불교의 세력이 강하여 티베트 불교가 전파되었다는 기록이 전혀 없다. 조선 초기에 신인종, 총지종이 사라진 이후로는 독자적인 밀교종단이 나타나지 않았고, 밀교의례 등이 선 사상이나 정토신앙에 융합되었다. 그나마 [[구한말]]에 집필된 <석문의범(釋門儀範)> 같은 각종 [[불교]]의례집에 밀교와 관련된 각종 다라니와 의례가 많이 등장하긴 하는데, 밀교의 교학적 연구와 즉신성불 사상보다는 실천적인 측면과 현세구복적 특성이 두드러진다.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 정책이 지속되어 밀교는커녕 주류 불교 종파들도 크게 사정이 빡빡해서 조선 후기에는 제대로 구족계를 이어받은 승려가 나오기도 힘들었기 때문에, 설령 밀교에 관심이 있는 [[승려]]들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모여서 종단을 구성할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원효]] 같은 현교 중심의 [[불교]] 대중화를 외친 고승이 대거 출현한 것도 있고, 도입 초기부터 토착신앙과 밀접하게 결합한 것도 있어, 중국이나 일본에 비교하면 유달리 밀교가 힘을 못 썼다. 사실 중국에서도 밀교는 다른 불교 종파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긴 했으나, 도입된 [[당나라]] 때부터 나라의 지원을 받고 왕실·귀족 중심의 성향이 강했으며, 당나라 후기 폐불정책이 시행되자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동북아시아 삼국 중에서 현재까지 밀교가 크게 성행한 나라는 사실상 일본뿐이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일본 불교]]의 [[진언종]]이 들어오긴 했으나, 어디까지나 조선 현지에 사는 [[일본인]]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하였을 뿐, [[한국인]]들에게 적극적으로 포교하지는 않았다. [[전라남도]] [[목포시]] 근처에 살던 일본인들이 유달산 바위에 [[구카이]]와 [[부동명왕]] 마애상을 조각했는데, 두 마애상은 2019년 기준으로도 멀쩡히 남아 있다. 현대 한국에서는 [[진각종]], 진각종에서 분리된 진언종·총지종이라는 종단이 밀교를 표방한다. [[진각종]]은 [[서울특별시]] [[강남구]] [[역삼동(강남구)|역삼동]]에 [[진선여자중학교]]·[[진선여자고등학교]], [[대구광역시]]에 [[심인중학교]]·[[심인고등학교]], [[경상북도]] [[경주시]]에 [[위덕대학교]]를 운영하는 등 교육사업도 많이 한다. 그러나 진각종 등 3개 종단은 일반적으로 실제 [[티베트]]와 [[일본]]에서 전수되는 밀교와 많이 다르다. [[진각종]]의 창시자 회당 손규상이 책을 읽어 밀교 지식을 습득하긴 했어도, 그보다는 '생활불교'라는 기치 아래 자신의 독자적인 교리를 더 강조했기 때문이다. [[진각종]]에는 출가하여 머리를 깎는 [[승려]] 제도가 없다. 전통적인 밀교와 달리 [[불상]]을 모시지 않으며, 복잡한 의례 등을 행하지 않는다. 꼭 밀교라고 해서 불상을 모시고 화려한 의례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불보살을 종자자로 모시기도 하는가 하면, 존격을 도상화한 삼매야형을 모시고 단순히 진언을 외우기도 한다. 불교계 일각에서는 불교로 인정하지 않고 [[원불교]]처럼 완전한 [[신흥종교]]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백용성 스님 등 고승들도 진각종을 불교 종단이라고 확실히 인정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