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그다드 (문단 편집) === 쇠퇴기 === 1055년에는 수니파 [[셀주크 제국]]이 바그다드를 정복했다. 이후 영향력은 강했다 약해졌다를 반복하긴 했으나, 바그다드는 이미 이슬람 세계의 중심지 역할을 상실했다. 비록 12세기 중반 ~ 13세기 전반에 걸쳐 아바스 칼리파가 다시 이라크의 지배권을 회복했으나 그 과정에서 셀주크 왕조와 벌인 공성전으로 시가지가 심하게 파괴되었다. >도시의 건물 대부분이 사라졌고 남은 것은 오직 도시의 허울 좋은 이름 뿐이었다. 도시는 마치 누군가 머물고 지나간 흔적이 지워지는 것 같았으며, 무언가의 자취가 서서히 흐려지는 느낌이었고, 상상력의 덧없는 환영 같았다. 시선을 끄는 아름다움 같은 것은 더 이상 없었으며, 여유롭게 유랑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이끄는 매력도 이젠 찾아보기 힘들다. 도시에 남은 것은 맹수같은 야생의 느낌 뿐이다. >----- > 아랍 여행가 이븐 주바이르 (1184년) [[파일:무스탄시리야 의대.jpg|width=800]] 아바스 칼리파 [[알 무스탄시르 1세]]가 세운 대학. 특히 1258년, [[몽골 제국]]의 공격으로 바그다드가 함락되고, [[칼리파]] [[알 무스타심]]이 피살된 사건은 바그다드 몰락의 결정타였다. 이 때 바그다드는 몽골군의 약탈과 학살로 황폐화되었으며, 이후 바그다드는 종교적 상징성마저 상실했다. 당시 [[지혜의 집]], 니자미야, 무스탄스리야 등 유명한 학문의 금자탑이 잿더미로 변한 사실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소실 이상으로 인류의 손실이었다. 거기다 칼리파는 [[이집트]] [[맘루크 왕조]]의 통제하에 [[카이로]]에서 선출되다가 1517년 [[오스만 제국]]의 [[셀림 1세]]가 이집트를 정복하면서 오스만 제국에 넘어간다. 이런 상태에서 1401년 [[티무르]]에게 정복될 때 20,000여명의 시민들이 학살되며 한 차례 수난을 겪기도 했다. 그로써 한때 세계 최대, 최고의 도시이던 바그다드는 지방 도시로 전락하고 말았다. >바그다드는 폐허 상태이다. 이곳에는 사원도, 신도들도 없고, 기도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으며, 시장도 열리지 않는다. 야자수 대부분은 말라 비틀어졌다. 이곳은 이제 도시라고 부를 수 없는 상태이다. >---- > 알 마크리시 (1437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