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까라족 (문단 편집) == 생활상과 문화 == [[파일:FCC137F2-2FA6-48E7-937F-D513B1901037.jpg]] 이들은 [[북아프리카]] 남부와 [[중앙아프리카]]에 걸친 [[사헬]]에 거주하며 [[사헬]]의 환경에 맞춰 고유의 유목문화가 발달해 있다. [[사헬]]은 [[아랍어]]로 점이지대 내진 가장자리를 뜻하며 문자 그대로 사하라와의 점이지대인 [[사바나]] 초원으로 풀과 관목이 있고 결정적으로 우기와 건기가 뚜렷해 강수량이 적은 [[아라비아 반도]]의 [[사막]]이나 [[중앙아시아]]의 스텝지대와는 여러모로 생활양식이 다를수밖에 없다. 괜히 이들의 생활습관이 [[중앙아시아]] 유목민인 [[몽골인]]-[[튀르크]]인이나 선조들인 아라비아 반도 [[베두인]]과 크게 다른게 아니다. 또한 이들은 [[체체파리]]가 옮기는 전염병인 [[수면병]]을 피해 건기와 우기를 따라 거주구역을 옮겨다녔다. [[체체파리]]가 창궐하는 우기에는 북상하여 [[수단 공화국|수단]] 남부 쿠르두판과 다르푸르, 센나르와 [[에티오피아]] 저지대 심지어 [[이집트]] 남부 아스완 및 [[리비아]] 페잔까지 북상하고 비가 안 와서 목초지가 없는 건기에는 남하해 [[남수단]], [[우간다]], [[콩고민주공화국]],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 [[중앙아프리카]] 일대까지 내려가고는 하였다. 현재도 이들 국가 몇몇 지역에서 유목이 일어나는데 수단과 남수단의 분쟁지대 아비에이의 경우 바까라족이 건기에만 남하하며 이들이 인구 상당수라 남수단 독립 시 분쟁이 일어났다가 현재는 공동 관리로 합의를 본 상태이다. 아비에이는 하필이면 [[석유]] 매장지라 분쟁이 있을수밖에 없었다. 이동하는 도중 땅이 비옥해보이는 곳에는 [[기장(식물)|기장]]과 [[수수]] 종자를 뿌려놓아 알아서 자라게 한 후 뿌려놓은 반야생 곡물이 익을 시점이 되면 다시 찾아와 추수해 먹었다. 이런 곡물들은 맛은 없고 수확량도 적었지만 생존력이 강했기 때문에 바까라족 생계에 많은 보탬이 되었다. 추수한 잡곡은 가축의 젖과 섞어 죽으로 만들어 먹었다. 바까라족 남성들은 이동할 때 말이나 당나귀를 타고 이동하였으며 여성과 아이들은 소를 타고 이동하였다. 이들은 개인 소지품이 거의 없었는데 중앙아시아의 유목민보다 소지품이 더 가난하고 초라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수단 중동부에서 주로 쓰이는 [[카스카라]] [[도검]]을 사용한다. 그리고 다른 아프리카 부족들과 마찬가지로 [[여성 할례]]같은 악습이 있었다. [[분류:수단 공화국의 민족]][[분류:아랍]][[분류:차드-수단 공화국 관계]][[분류:차드의 민족]][[분류: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민족]][[분류:니제르의 민족]][[분류:나이지리아의 민족]][[분류:나무위키 아프리카 프로젝트]][[분류:유목민족]]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