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레인/역사 (문단 편집) === 중세~근현대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바레인 사원.jpg|width=100%]]}}}||{{{#!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바레인 성채 1.png|width=100%]]}}}|| |||| 바레인 최초의 이슬람 사원 (마스지드 카미스)과 포르투갈이 [[마나마]]에 세운 바레인 성채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마나마)] [[정통 칼리파]]가 사산조 페르시아를 멸함으로써 이 지역도 [[이슬람]]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슬람 제국]]의 분열 이후 [[이스마일파]]인 [[카르마트]], [[우윤 왕조]] 등 아라비아 이슬람 왕조의 지배를 차례로 받았자 이후 1521년부터 1601년까지는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으며 이후에는 [[사파비 왕조]]가 이들을 몰아내고 바레인을 점령하였다 이후 1717년에는 오만 제국이 사파비왕조를 몰아내고 바레인을 지배했으나 다시 사파비 왕조가 바레인을 재 점령했다 이러한 혼란속에서 1783년 쿠웨이트에서 바레인으로 이주한 우트바 부족의 알 칼리파 가문의 아흐메드 빈 무함마드 빈 칼리파가 바레인을 공격해 페르시아인를 몰아내고 바레인을 차지했다.그러나 알 칼리파 가문내에 다툼과 토착 부족들과에 다툼은 계속되었다 한편,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바레인은 사우드 가문과 페르시아의 압력에 맞서기 위해 [[영국]]과 손을 잡았는데 오히려 이게 독이 되어 1861년 [[영국]]의 [[보호령]]이 되고 말았다. 현지에서 저항운동이 있기는 했으나 영국의 무력에 분쇄되었다. 본래 바레인은 [[진주]] 산지로 유명했던 곳이었으나 [[1930년대]]에 [[석유]]가 발견되고, 영국은 [[BP plc]] 등을 진출시켜 석유 시추에 나섰다. 2차대전 이후 식민지 독립을 물결을 맞아 독립이 논의되었다. 당시 바레인을 지배하던 영국에 맞서 [[이란 제국]]도 바레인에 영유권을 주장했었으나, 바레인 독립 문제를 [[국제연합]]에 의뢰하기로 합의,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독립의견이 우세함을 확인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제278호|1970년 UN 안전보장이사회의 바레인 독립 결의]]에 이어 이란 제국 국회가 바레인 영유권 주장을 포기할 것을 결의하여 1971년 8월 15일, 바레인국(دولة البحرين, Dawlat al-Baḥrayn)이라는 이름의 전제군주국으로 독립했고, 동시에 [[UN]]과 [[아랍 연맹]]에 가입했다. 카타르 및 [[아랍에미리트]] 토후국들과 같이 영국의 보호령으로 있었기 때문에, 아랍에미리트 연방에 가입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결국 바레인, 카타르는 아랍에미리트 연방과 따로 독립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