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빌로니아 (문단 편집) === 고바빌로니아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고바빌로니아)] 사실 [[바빌론]]은 [[메소포타미아 문명]] 초기부터 두각을 드러내는 도시는 아니었다. 문명 초기에는 오히려 [[우루크]]나 [[라가시]], [[우르]]나 다른 도시들이 압도적으로 강력했고 바빌론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촌동네에 불과했다. [[우루크 시대]]에는 우루크가, 그 뒤를 이은 [[우르 제3왕조]] 시대에는 우르가 메소포타미아 전체에서 가장 번영하는 도시였고 바빌론은 아무도 모르는 중소형 마을이었다. 바빌론이 그나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건 기존의 패권국 우르 제3왕조가 기원전 2004년에 망하고 난 이후부터였다. 우르 제3왕조가 무너지자 수많은 민족들이 권력의 공백을 노리고 메소포타미아 일대로 유입되었는데, 이중에는 [[셈족]] 계통의 [[아모리인]]이 포함되어 있었다. 기원전 1894년에는 아모리인 족장 '수무아붐'이 이웃 [[도시국가]] 카잘루에게서 [[바빌론]]이라는 이름의 작은 마을을 넘겨받아 터를 잡았다. 이 수무아붐이 세운 왕조가 그 유명한 [[고바빌로니아]]다. 하지만 수무아붐은 스스로를 '바빌론의 왕'이라는 칭호로 높여 부르지도 못했다. 칭왕하지도 못할 정도로 바빌론이 워낙 작은 마을에 불과했기 때문. 수무아붐 후에도 수무라엘, 사비움, 아필신 등이 즉위했지만 이들 역시 기록이 모호하고 왕이라고 불리지도 못했다. 그나마 아필신의 뒤를 이은 신무발리트 시절에 처음으로 '왕'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을 만큼은 성장했다고 한다. 물론 이때까지도 바빌론은 인근 [[우르]]나 [[우루크]]의 강대국에 가려진 소왕국이었고 반쯤은 [[엘람]]에 예속된 상태였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5170586_orig.jpg|width=100%]]}}} || || '''{{{#E4C77E [[함무라비|{{{#E4C77E 함무라비 대왕}}}]]의 궁정 }}}''' || 바빌론이 우리가 아는 그 화려한 강대국으로 떠오른 것은 고바빌로니아의 6대 왕인 [[함무라비|함무라비 대왕]] 시절부터였다. 함무라비는 탁월한 외치와 내정 능력으로 작은 마을 바빌론을 거대한 도시로 확장했다. 세수를 정비하는 한편 제대로 된 [[중앙집권제]]를 확립했고, [[엘람]]으로부터 독립을 이뤄냈으며 [[이신(고대 도시국가)|이신]], [[라르사]], [[키쉬]], [[라가시]], 니부르, 보르시파, [[우르]], [[우루크]], [[움마]] 등 쟁쟁한 대도시들을 죄다 복속시켰다. 심지어 동쪽으로는 저 멀리 [[엘람]], 서쪽으로는 [[아시리아|고아시리아]]를 정벌하며 웬만한 지방들은 모조리 정복할 수 있었다. 함무라비는 활발한 정복 사업을 통해 혼란스러웠던 메소포타미아 남부를 재통일했고, 이때 이후로 메소포타미아 남부 지방은 '바빌로니아'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함무라비의 업적은 단순히 정복 사업에 그치지 않았다.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처럼 법과 제도를 일원화하며 나라의 기틀을 잡았다. 또한 기존의 종교 중심지였던 니푸르의 신성성을 박탈하고 그 대신 바빌론을 새로운 종교 중심지로 만들었다. [[마르두크]]가 바빌론 만신전의 주신으로 자리잡은 것도 바로 이 시기. 함무라비 재위 말년 즈음에는 바빌론은 작은 [[성읍국가|성읍]]에서 거대한 대도시로 발전했으며, 메소포타미아의 왕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하는 핵심 도시로 여겨지게 된다. 그만큼 함무라비의 40년이 넘는 재위 기간 동안 바빌론은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발전했다. 하지만 함무라비가 죽자 고바빌로니아는 빠르게 무너졌다. 메소포타미아 남부는 거대한 대평원 지대라 공격에 대단히 취약했다. 메소포타미아 최남단에는 '시랜드 왕조'[* 문헌에는 이 왕조가 발원한 지방이 문자 그대로 '바다의 땅', 즉 Sealand라고 표기해놨다. 그 지방의 이름을 따서 왕조의 이름을 붙인 것. [[바다 민족]]과는 전혀 상관없다.]가 들어서 독립을 선포했지만 삼수일루나 왕은 이를 막을 능력이 없었다. 한때 함무라비 대왕이 억눌러놨던 고아시리아는 바로 반란을 일으켜 독립했고 고바빌로니아의 영향권은 바빌론과 그 주변 일대로 쪼그라들었다. 고아시리아는 메소포타미아 중부까지 쳐들어와 고바빌로니아의 영토를 갉아먹었다. 삼수일루나의 후계자 아비에슈흐 왕은 시랜드 왕조를 다시 무릎 꿇리려 시도했지만 역시나 실패. 그의 뒤를 이은 왕들은 몰락한 바빌론에 만족한 채로 건물이나 개보수하는 것밖에 업적이 없었다. 결국 최후의 왕 삼수 디타나가 저 멀리 [[히타이트]]의 [[무르실리 1세]]에게 대패하고 바빌론이 함락되면서 고바빌로니아는 함무라비 사후 150여 년 만에 허무하게 몰락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