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이충시 (문단 편집) === [[중일전쟁]] === ||[[파일:external/www.epochtimes.com/1205010858582068_1--ss.jpg]]|| || 1945년 6월 13일 쓰촨에서 장제스와 함께 201사단을 사열하는 바이충시 ||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바이는 국민당 군사위원회 부참모장 겸 군훈부장(軍訓部長)에 임명되었다. 바이충시는 루산 회의에 참석, 일본에 맞서 온 중국이 결연히 떨쳐 일어나 맞설 것을 천명하는 [[루산성명]]의 발표에 일조했다. 베이핑, 톈진, 상하이, 항저우가 함락된 이후 일본군은 만주국을 승인하고 화북을 일본의 괴뢰국으로 만들라는 요구를 해왔다. 일본군의 강력함을 목도한 국민당의 모든 파벌들이 일본에게 굴복하는 것 말고 도리가 없다고 고개를 저었고 바이충시도 그 중 하나였지만 장제스는 이를 결연히 거부, 일본과의 결전을 선포했다. 이에 일본군은 장제스의 반성을 끌어내겠답시고 더 이상 진격하지 말라는 상부의 명령을 무시, 수도 난징으로 쳐들어오기 시작했다. [[탕성즈]]가 사령관이 되어 [[난징 전투|난징을 수비하려 했지만]] 난징도 곧 함락되었고 [[난징 대학살|수십만의 중국군 패잔병, 난징 시민, 피난민들이 일본군에게 도륙되었다.]] 이후 일본군은 리쭝런이 수비하던 산둥과 장쑤의 5전구를 점령하기 위해 쉬저우를 쳤다. 이에 장제스는 바이충시를 5전구 참모장으로 급파했다. 바이충시와 리쭝런을 위무하기 위해 장제스가 직접 그들을 찾아와 격려했다. 바이충시의 부하들이 장제스가 탄 비행기를 적기로 오해하고 격추시킬 뻔 한 해프닝이 있었고 장제스는 이에 격노하여 병사들을 처형하려 했으나 바이충시가 총사령관을 위한 특별한 환영식이었다고 너스레를 떨자 그들을 용서해주었다. 장제스는 리쭝런과 같은 방에서 하룻밤을 잔 다음에 우한으로 돌아갔고 바이충시는 장제스가 붙여준 지원군들까지 합쳐 총 60만 대군을 지휘, 타이얼좡에서 일본군 2만명을 섬멸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일본군은 너무도 강력했고 중국군의 준비는 너무 부족했다. 타이얼좡의 대승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은 실질적인 수도로 기능하던 우한을 공격했고 중국군은 일본군 6만명을 사살하는 치열한 저항을 벌였으나 결국 패하고 우한도 내주어야 했다. 얼마 후 최후의 대도시인 광저우까지 잃음으로 중국의 대도시들은 일본군에게 모두 빼앗겼다. 1938년 11월 25일 난웨 회의가 열리자 바이충시도 참석했다. 장제스는 여기서 게릴라전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방침을 확립하였고 바이충시는 일본군은 러시아를 침략했던 나폴레옹처럼 몰락할 것이라고 외쳤다. 바이충시는 계림 행영주임으로 임명되어 후난, 광시, 광둥 지역을 관할했다. 또한 바이충시는 전국이슬람구국동맹을 조직, 중국의 이슬람 교도들에게 중일전쟁을 이교도 일본에 맞선 지하드로 선포함으로 이슬람 교도들과 화교들의 지원을 이끌어내고자 했다. 그리고 중국 서북부의 마씨 군벌들과 연계하는 임무도 맡았다. 1939년 1월 22일 바이충시는 국방위원회 상무위원에 임명되었으며 1939년 9월 일본군 11군이 쉐웨가 지키던 후난 성의 9전구를 노리고 쳐들어오자 쉐웨를 도와 일본군을 크게 물리쳤다. 11월 6일엔 장제스와 쑹메이링이 직접 바이충시와 그 어머니를 만나 치하하기도 했다. 1939년 11월 일본군이 중불 국경의 요충지인 난닝을 점령하자 바이충시는 난닝 탈환 작전을 총지휘하였고 22개 사단 15만 대군과 100여대의 항공기까지 동원하여 작전에 나섰다. 바이충시는 쿤룬관 전투에서 일본군을 섬멸하고 일본군 1만명을 사살했으나 일본군 5사단장 [[이마무라 히토시]]가 퇴각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거부, 막대한 항공 지원을 등에 업고 치열하게 저항하는 바람에 난닝을 탈환하진 못하고 퇴각해야 했다. 이후 난닝은 1940년 11월에 중국군에게 탈환된다. 이후 바이충시는 군훈부장까지 승진했으며 충칭과 구이린을 오가며 전쟁을 지휘했다. 중일전쟁이 끝나자 쑹메이링과 같이 케이크를 먹으며 승전을 축하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