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이킹 (문단 편집) == 개요 == 바이킹은 [[8세기]] ~ [[11세기]] 배를 타고 무역이나 약탈로 살아가던 [[노르드인]]들을 통칭하는 용어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유틀란드 반도]]에 한정되어 살던 [[노르드인]]들은 8세기 말부터 바깥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발트해]]와 [[북해]]는 물론이고 [[지중해]]와 [[흑해]] 심지어 [[카스피해]][* [[볼가강]]을 타고 진출한 것이다.] 등 바닷가라면 유럽 어디든지 배를 타고 나아갔으며, [[그레이트브리튼섬|브리튼 제도]], [[프랑스]], [[이베리아 반도]], [[이탈리아]], [[북아프리카]] 등 지중해권과 유럽 전체를 공포에 몰아넣었다.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전성기 시절에는 [[잉글랜드]]의 7왕국들을 죄다 멸망시킬 뻔 했으며 [[프랑스]]의 수도 [[파리(프랑스)|파리]]를 함락하기 직전까지 몰아넣었다. 당시 유럽인들은 바이킹을 '신의 진노'라고 불렀으며 자연재해와 동일한 취급을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바이킹들도 시대가 변화하면서 점차 쇠락했다. 유럽에서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지며 더이상 치고빠지는 전술이 통하지 않을만큼 해안 방비가 강화되었고, [[기사]]들의 등장으로 바이킹들의 공격력이 상대적으로 크게 약화됐다. 게다가 [[노르망디 공국]]처럼 아예 현지에 정착해 완벽히 동화되어버린 바이킹들이 되려 제 땅을 지키기 위해 다른 바이킹들을 쫒아내면서 바이킹들은 더욱 먹고살기 힘들어졌다. 결정적으로 스칸디나비아의 기독교화와 중앙집권화가 치명타를 입혔다. 같은 기독교도들을 노예로 팔아넘기는 걸 금지한 교리 때문에 바이킹들이 가장 큰 이익을 봤던 노예무역이 더이상 불가능해졌으며, 중앙집권적인 왕국들이 세워지며 자국민들이 함부로 타국을 약탈하는 걸 엄격히 금지한 것이다.[* 신생 기독교 왕국인 덴마크 왕국, 스웨덴 왕국, 노르웨이 왕국은 자연스레 기존의 유럽 기독교 질서에 편입되려 시도했다. 당연히 기존 유럽 세계의 강대국인 [[프랑스 왕국]]이나 [[잉글랜드 왕국]]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는데, 프랑스와 잉글랜드가 스칸디나비아 3국에게 바이킹들을 통제하라는 매우 강력한 압박을 넣으면서 좋든싫든 바이킹 활동을 억제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결국 1066년 [[스탬퍼드 브리지 전투]]에서 바이킹 군대가 패배하며 바이킹들은 더이상 타국을 침략할 여력을 잃어버렸고, 학계에선 이를 '바이킹 시대'의 종말로 본다. [[해적]]으로서의 야만스러운 바이킹의 인상이 깊게 남아있어서 '거대한 [[도끼]][* 또는 양날 도끼로 묘사되는 경우도 있는데, 실제로 바이킹은 양날 도끼보다는 외날 도끼를 더 많이 썼다.]를 들고 뿔투구를 쓴 잔인하고 [[마초]]적인 [[바바리안]]'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제로는 탁월한 항해사이자 탐험가, 상인이기도 했다.''' [[코난 사가#s-8|또한 그들은 편견과 달리 문제가 생기면 대화로 해결하려고 했다.]] 자유민들은 매년 의회(althing)를 소집하여 법을 제정하거나 분쟁을 해결했다. 이러한 의회 문화는 [[영국]]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오늘날 [[아이슬란드]]의 의회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의회이기도 하다.[* 다만 바이킹들은 법집행도 상당히 엄격하게 하기로 유명했고, '''실제 집행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잔인한 사형법'''인 [[피의 독수리]] 의식도 바이킹들의 사형법이기도 하다.] 그들의 항해술이 얼마나 경이로웠는지, [[아이슬란드]]나 [[그린란드]]는 물론이고 [[캐나다]] 동부와 뉴펀들랜드까지 진출하여 [[빈란드]]라 이름 붙이고 식민지 란세오메도스(L'Anse aux Meadows)를 건설한 흔적이 남아있다. 이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보다 500년 일찍 북아메리카에 발을 딛은 업적'''이었다. 물론 원주민들과의 마찰과[*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그들에게 [[우유]]를 선물로 받았다가 [[유당불내증]]으로 인해 소화불량에 걸린 원주민들이 우유를 독으로 오해해 적대적 입장으로 돌아섰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설화에 불과하고 별 신빙성은 없다. 바이킹들이 원주민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워낙에 거리가 멀어 본토와의 연계가 어려웠던 점이 더 큰 요인이었을 것이다.] 기후의 변화로 결국 그린란드로 돌아가야 했으나 그 모험성과 발견은 분명 무시못할 성취였다.[* [[북아메리카]]에서의 정착을 단념하고 철수한 후에도 바이킹들이 캐나다를 방문한 흔적이 보이는데, 이는 배를 만들기에 적합한 양질의 목재를 구하기 위해서였던 듯하다.][* 재미있게도 근대 영국이 범선을 건조할 때 주로 사용하였던 목재도 노르웨이산이나 북미산 침엽수였다.] 바이킹들은 북아메리카 외에도 [[키예프]], [[콘스탄티노폴리스]], 심지어 저멀리 [[바그다드]]까지 가서 교역을 했으며 이 과정에서 동유럽과 러시아로 진출했다. 심지어 이때 바이킹 [[류리크]]와 그 후계자들은 현대 러시아의 기원이 되는 [[루스 카간국]]을 세우기도 했다. 어찌보면 러시아의 기원에 바이킹이 끼어있다고 해도 전혀 과언이 아닌 셈. 의외로 현대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민족이기도 하다. [[북유럽 신화]]는 [[그리스 로마 신화]], [[이집트 신화]]와 함께 세계 3대 신화로 꼽히고 북유럽 신화를 기반으로 한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는 그 비극성과 장엄함으로 전세계에 영감을 뿌렸다. 조금 더 현대로 오면 [[반지의 제왕]]의 작가 [[J. R. R. 톨킨]]은 북유럽 신화에서 상당 요소를 차용했고 판타지물에 [[클리셰]]처럼 등장하는 [[오크]], [[드워프]], [[엘프]]도 모두 북유럽에서 기원했다. [[마블 코믹스]]의 작가 [[스탠 리]]는 [[토르(마블 코믹스)|토르]]라는, 대중문화에서 빠질 수 없는 히어로를 만들어냈으며 바이킹들은 게임, 미디어, 영화 등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손님이 되었다. 덕분에 북유럽과 바이킹들의 문화적 영향력은 아직도 현재진형형이라고 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